한화오션(042660)은 5일 서울 장교동 본사에서 설명회를 열고 “군사기밀을 유출한 업체가 특수선 사업을 끌고 가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며 “HD현대중공업 임원을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한화오션은 전날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임원을 수사하고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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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 임원을 고발한 것은 이 같은 방사청 조치를 뒤집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임원이 형사처벌되면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추가 재심의를 통해 입찰 자격 제한이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한화오션은 정보공개를 청구 등을 통해 새롭게 얻은 판결문을 임원 개입 근거로 제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불법 취득한 기밀자료를 비인가 내부서버(NAS)에 관리했다. 압수수색과 보안감사 대응 매뉴얼도 마련했다. 보안 감사 때는 네트워크를 단절하는 방법으로 감시를 피했다. 직원들의 출장복명서에는 군사기밀 탈취 내용이 기재됐다. 서버 관리 비용 지출 내역이나 출장복명서 모두 임원 결재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한화오션 주장이다.
한화오션은 군 검찰에 요청해 확보한 형사사건 기록도 근거로 제시했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군 실무자로부터 군사기밀을 제공받아 열람한 사실을 부서장과 임원, 중역에게 결재받았으며 결재 계통에 있는 상급자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군사기밀을 몰래 촬영한 행위에 대해 임원으로부터 질책받았느냐는 수사관의 질문에는 ‘질책받은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형사사건 기록에는 HD현대중공업 팀장급 직원이 해군본부를 방문해 함정기술처장을 쉽게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담겨 있었다. 이에 해당 직원은 “직급이 더 높은 분을 따라서 들어가면 몰라도 혼자서 직접 만나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고 답했다. 이 역시 임원의 직접적 개입을 입증하는 증거라는 게 한화오션 측 주장이다.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는 “군사기밀 탈취가 직원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전체적으로 경영진까지 포함해 당연한 업무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화오션은 이번 사안이 K-방산 전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원 법무법인율촌 변호사는 “기업이 보유하지 않아야 할 어마어마한 자료가 비인가 서버에 저장되고 관리된 사건이니 정부나 기업 입장에서는 축소하고 싶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사건이 이대로 정리되면 모든 방산업체는 임원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불법 유착관계에 의한 암행적 관행과 비리, 불법을 저지르고 정부는 손 놓는 걸 인정하게 되는 꼴”이라며 “국가 안보를 바로 세우고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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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건 조(兆)단위 대규모 사업인 KDDX 수주 여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KDDX는 미국산 ‘이지스’에 버금가는 전투체계를 국산화해 탑재하는 첫 한국형 구축함이다. 2030년까지 총 6대를 도입하는 KDDX는 개발비만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척당 건조비는 1조원 대로 총 7조8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국내에서 구축함 급 대형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방산업체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유일하다.
함정 사업은 보통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로 나눠 진행된다. 결격 사유가 없는 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양산을 위한 상세설계와 1번함 건조를 담당해 왔다. KDDX 개념 설계는 한화오션이 수행했지만,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진행했다. 이에 따라 별일이 없었으면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와 1번함 건조를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기본설계 업체인 HD현대중공업이 해당 사업을 담당하는 게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HD현대중공업은 군사기밀 유출 사건 탓에 2025년까지 방위사업 입찰에서 1.8점의 보안사고 감점를 적용받고 있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경쟁계약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입찰은 올 하반기 중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