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은 총재가 “한은도 정부다, 독립성의 전제조건은 매우 높은 능력이다, 한은의 독립성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정부 내에서의 독립이다” 등의 발언으로 독립성을 정책과제의 후순위로 뒀던 점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사실 김 총재 취임 후 한은의 독립성은 약화됐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지난해 4월 기준금리를 더 이상 내리지 않을 듯한 메시지를 내보낸 후 5월 전격 인하했던 일은 정부로부터의 압박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김 총재는 금통위 일주일 전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닌데 어디까지 내리란 말이냐”라고 언급한 후 정작 기준금리를 인하해 이해할 수 없는 행보란 평가를 받았다. 한은 일부에서도 ‘독립성을 지킬 것이면 끝까지 지키지, 결국 인하할 거면서 일관성과 신뢰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내린다. 이 때문에 이번 조사에서 차기 총재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전문성에 이어 ‘정책일관성·신뢰성’ 등이 꼽혔다.
기재위원들은 정부로부터의 독립만 강조하진 않았다. 최근 커지고 있는 시장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도 필요하다고 봤다. 윤호중 위원은 “정부, 대기업은 물론 요즘엔 시장도 권력이고 외압”이라며 “정치, 시장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지켜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재가 시장과의 소통이 잘 안 돼 ‘불통 김중수’로 불렸지만 정작 이번조사에서 시장과의 소통은 정책 과제 중 4위에 그쳤다. 다만 정성호 위원은 “가장 중요한 게 시장과의 소통”이라며 “각 경제 주체와 활발히 소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와의 정책공조는 후순위인 5위로 꼽혔다. 중요도 평가에서 ‘보통’이나 ‘중요치 않다’란 평가가 절반 이상이나 됐다. 최재성 위원은 “한은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중립”이라고 강조했다.
기재위원들은 차기 한은 총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전문성을 강조했다. 통화신용정책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 대한 국제 감각’을 중요하게 제시했다. 윤호중 위원은 “미국이 양적완화(QE)를 축소하는 반면,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엔화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며 “차기 총재는 이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국 통화정책이 엇갈림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 혼란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했는지 기재위원들은 중요 정책과제로 ‘물가안정’보다 ‘금융안정’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다만 국제적 감각을 차기 총재의 중요 덕목으로 꼽으면서도 한은의 ‘국제적 위상 강화’는 가장 후순위 과제로 꼽혔다. 한은의 국제적 위상 강화는 김 총재가 가장 강조했던 분야다. 김 총재는 1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코노믹 클럽 오브 뉴욕(Economic Club of New York)’에 국내 인사로는 처음으로 초청받아 강연을 했으며 재임중 국제회의·행사를 이전의 3배가량 늘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