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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 회당 1억원? 드라마 제작 새판 짜야할 때

고규대 기자I 2014.04.29 15:48:29
[이데일리 고규대 문화부 부장] “무조건 호가가 1억원이에요.” 한 지상파 드라마 제작사 대표의 푸념이다. 최근 편성된 드라마 주인공을 물색하다 회당 1억원의 출연료를 달라는 배우 소속사의 말에 기겁했다.

드라마 제작 여건이 위태롭다. 일본 한류의 성공에 힘입어 천정부지로 치솟은 드라마 제작비가 좀처럼 꺾일 줄 모른다. 몇몇 배우는 여전히 회당 1억원을 고수하고, 몇몇 특급 작가는 회당 5000만원을 달라고 한다. 스타급 PD 역시 높은 연출료를 요구한다.

과연 가능할 셈법일까? 드라마 ‘찬란한 유산’ ‘시티헌터’ ‘주군의 태양’ 등으로 중국 한류 드라마의 첨병에 선 진혁 SBS PD는 요즘 제작 분위기를 두고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또 한국과 일본의 역학 관계에 선 정치경제적 여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한국 배우의 스타성에 주목하고, 중국은 한국 드라마의 시스템에 주목한다고 관측했다. 배우, 작가, 연출 등 드라마 제작의 당사자가 자기 몫만 고집하다가는 자칫 시스템 자체를 빼앗길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등을 제작한 고(故) 김종학 감독의 사망 사건은 경종을 울린 계기였다. 제작사의 출혈 경쟁에 따른 왜곡된 드라마 시장을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방송사, 제작사, 배우, 작가 등 전문가가 참여한 상생 협의체가 구성됐다. 지난 3월 열린 ‘상생의 콘텐츠 제작 생태계 조성 방안’ 토론회에서는 몇가지 해법이 제시됐다. △작가료 상한선을 전체 제작비의 7% 이하(2300만원 초과금지) △1인 출연료 상한선을 전체 제작비의 10% 이하(3000만원 초과 금지) △주연급(3인) 출연료 상한선을 전체 제작비의 20% 이하(7000만원 초과 금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모두가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말이다. 실천에 옮겨지려면 ‘통 큰 양보’가 필요하다. 드라마 제작 여건도 새 판을 짜야한다.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 회당 20만 달러에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중국에 드라마가 팔린다해도 아직 회당 5만 달러 내외다. ‘겨울연가’ ‘별에서 온 그대’ 등 최고 성적의 드라마를 잣대로 삼을 일이 아니다. 배우의 몸값도 제작비 대비 적정 수준으로 내려와야 한다. 작가도 소위 ‘잘 팔리는’ 한류성 콘텐츠 기획에만 머물러선 안될 일이다. 창의적인 이야기의 힘에 집중해야 한류 드라마의 미래도 건강해질 수 있다.

배우, 작가, PD 등을 위한 ‘러닝개런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미 국내 영화계에서는 기본 출연료 외에 러닝개런티를 받는 게 관례가 됐다. 무조건 높은 개런티를 요구하기 보다는 자신의 역할에 따라 정당한 배분을 받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만들 때도 흥행에 따라 수익 배분을 투명하게 한다면 제작 당사자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드라마 제작 여건도 아픈 현실을 맞딱뜨린 대한민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드라마 회당 제작비 4억원 시대에 접어들었다. 16부작 미니시리즈 기준으로 총 제작비는 약 70억원 수준이다. 톱스타가 출연하는 최근 몇몇 드라마는 90억원을 넘어섰다. 일각에서는 스타급 배우, 작가, PD만 몫을 챙기고 무명 배우, 작가, 스태프는 아직 배고프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최저 출연료, 최저 작가료, 최저 임금 등을 고려해야할 대목이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아직 설익은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목도한 것과 마찬가지다. 진혁 PD의 지적을 새겨들을만 하다. “제 몫 챙기기에만 나섰다가 어렵게 꽃피운 한류가 저물 수 있다.” ‘두 유 노 싸이?’를 물으면서 스스로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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