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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이스라엘 중부 키르얏 갓 지역에 250억달러(약 32조5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것은 웨이퍼 제조 공장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반도체는 동그란 원판형의 웨이퍼에 회로를 새겨 만드는데, 인텔이 반도체 핵심 소재 양산에 보다 나서겠다는 뜻이다. 공장은 2028년 가동을 시작해 최소 2035년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인텔은 이미 지난 1974년 이스라엘에 진출해 50년간 50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7나노(nm, 머리카락 두께의 10만분의 1) 또는 10나노칩을 생산하는 팹28 공장을 비롯해 4개의 개발 및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웨이퍼 공급을 늘리면서 본격적으로 최첨단 칩 양산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눈길을 끄는 건 키르얏 갓 지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전쟁 중인 가자지구에서 42km 떨어진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인텔이 대규모 투자 발표를 한 것은 오랜 기간 이스라엘과 쌓아온 신뢰를 보여준 셈이다. 인텔은 2017년 이스라엘의 자율주행 지원 시스템 개발 업체인 ‘모빌 아이 글로벌’을 150억달러(약 19조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전 세계가 반도체 투자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이스라엘이 악과 전쟁을 벌이는 시점에서 이번 투자는 이스라엘 경제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라고 말했다.
인텔의 이런 전략은 펫 겔싱어 CEO가 2021년 복귀하면서 밝힌 ‘IDM 2.0’의 일환이다. 수십년간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 강자에 안주했던 인텔은 모바일이나 인공지능(AI) 대응에 늦어지면서 ‘반도체 왕좌’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메모리분야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분야는 TSMC·삼성전자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CPU시장마저도 AMD가 3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인텔을 추격하고 있다. 겔싱어 CEO는 가라앉고 있는 인텔을 구하겠다고 선언했고, 설계·제조·패키징 등 각 부문을 개방화·전문화하는 방식으로 과감한 투자를 발표하면서 혁신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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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지인 미국에도 471억달러(약 61조원)을 투자해 오하이오와 애리조나, 코스타리카, 뉴멕시코주 등지에 각종 생산, 테스트 시설을 설립하고 있다. 한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에서 벗어나 다변화한다는 전략을 내세웠고, 미국과 유럽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끌어냈다.
인텔은 성명에서 “키르얏 갓 공장 확장은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 또는 계획 중인 투자와 함께 탄력적인 글로벌 공급망을 육성하려는 계획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미래 먹거리 파운드리 2위 올라선다…최첨단 공정 개발도
특히 인텔은 미래 ‘먹을거리’인 파운드리 강화에 나서고 있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과거 인텔은 2016년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했다가 2년 만에 철수했지만, 반도체 생산시설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면서 2021년 다시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했다.
현재 파운드리 최강자는 대만의 TSMC다. 지난 3분기 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이 차지하는 비중은 57.9%,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2.4%다. 인텔의 점유율은 10위권 밖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시장 2위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이다.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하고 그간 내부거래했던 인텔 자체 반도체 물량을 별도 매출로 잡기로 하면서다.
인텔은 파운드리 기술력도 대폭 높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상태다. 인텔 파운드리 공정은 7나노 수준이지만 내년 상반기(1∼6월) 2나노급 20A(옹스트롬), 하반기 1.8나노급 18A 공정을 양산하겠다는 계획이다. 본격 양산에 들어선 후 수율(정상품 비율) 등을 확인해야 기술력을 알 수 있지만, 목표시점 만큼은 TSMC와 삼성전자의 2025년보다 앞서 있다.
컨설팅 회사 RHCC의 CEO인 레슬리 우는 “2나노 기술을 원하는 주요 고객들은 지정학적 위기에 있는 TSMC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양한 파운드리에서 칩 생산을 분산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충분한 수율이 뒷받침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