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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반대 시위, 오히려 좋은 일”…독일 공무원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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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길 기자I 2025.10.21 09:40:47

민주당·조국혁신당, 전력망 갈등 해법 국제심포지엄
전력망 특별법 시행 韓, 곳곳 반발 커 ‘제2 밀양’ 우려
주민수용성 제도화한 독일, 강행 아닌 대화·참여 택해
독일 정부 “탑다운 안돼…투명한 공개로 주민과 함께”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독일에서도 송전탑 반대 시위를 합니다. 전력망을 확대하면서 이런 시위를 당연히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시위가 나쁘다고 볼 수도 없고요.”

보도 헤르만(Dr. Bodo Herrmann) 독일연방네트워크청 연방부문 계획 승인 및 전력망 확장 부서장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독일 전력망 정책의 시사점과 한국의 전력망 갈등 해법 국제심포지엄’에서 “전력망 인허가 단계에서 고소를 당하기도 하지만 이런 고소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전력망 담당 공무원이 관련 시위·소송이 벌어져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보도 헤르만(Dr. Bodo Herrmann) 독일연방네트워크청 연방부문 계획 승인 및 전력망 확장 부서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공개한 독일의 전력망 시위, 공청회 모습이다. 사진 왼쪽 아래 피켓에 ‘에너지 전환은 찬성하지만 송전망 건설은 반대한다’고 쓰여있다. (사진=보도 헤르만 부서장)
독일도 겪는 전력망 갈등…해법은 ‘주민수용성’ 제도화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이 추진한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송전탑 건설을 비롯한 전력망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취지에서 열렸다. 이재명정부는 인공지능(AI) 3대 강국, 에너지 전환,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달성하려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전력망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2일 위원회를 통해 전국 99개의 송전선로와 변전소 구축 사업을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전력(015760)에 따르면 일부 전력망 사업은 지연 기간이 150개월 이상에 달한다. 과거에는 전력 주요 수요지(수도권)와 주요 공급지(지자체 발전소)가 떨어져 있어도 송전망 건설로 이를 해결했지만, 갈수록 송전망 건설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생존권, 주거권, 재산권 침해에 반발하고 있다.

독일도 비슷한 갈등을 겪었지만 ‘주민수용성’을 중시하는 제도를 통해 이 갈등을 현명하게 풀었다. 핵심은 △법으로 보장된 5단계 주민 의견수렴 제도 △투명한 대국민 정보공개 △정치적 책임성이다.

헤르만 부서장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발표 PPT에 ‘전력망 확장-소통과 참여(Grid expansion-Communication and participation)이라고 쓰여 있다. 이번 심포지엄은 서왕진 조국혁신당·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환경연구원,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기후시민프로젝트가 주최하고 주한 독일연방공화국 대사관이 후원했다.(사진=최훈길 기자)
헤르만 부서장은 “독일도 전력망을 둘러싼 갈등이 많지만, 이를 줄이기 위해 5단계 법적 의견수렴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모든 서류를 공개하는 정보공개 절차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절차가 길어져도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공동의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 인허가 절차 중 농장 주인이 불만을 제기하면 직접 현장을 찾아 의견을 청취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시위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기 때문에 시위는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시위·고소가 민주주의 과정이라는 지적이다.

염광희 독일 아고라에너르기벤데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각종 위원회, 시행령·시행규칙 등에 떠넘기지만 독일은 전력망 설치 관련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법률에 규정돼 있어 정치인들이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독일 법률에 ‘재생에너지와 송전망은 사회적 권익에 우선한다’고 규정돼 있어 관련 전력망 사업이 법률에 담기는 순간 시위를 해도 승소하는 게 쉽지 않다”고 전했다.

독일은 법률로 규정된 5단계 의견수렴 절차 초기부터 당국과 대중이 함께 전력망 관련 논의를 하는 구조다. (자료=헤르만 부서장)
다만 염 위원은 “주목할 점은 법률에 관련 전력망 사업이 담기기 전에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는 게 독일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128개 전력망 프로젝트가 의견 수렴 절차 5단계 중 어느 상황인지 정부 웹사이트를 보면 투명하게 시민들에게 공개돼 있다”며 “이런 투명한 절차를 거쳐 지역주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엄청 많이 듣고 법률로 해당 전력망을 확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수용성 없는 전력망 추진, 제2 밀양 사태 우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달 시행된 전력망특별법에 따라 ‘전력망 구축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아야 하는 인허가는 지자체가 60일 내 허가 여부를 회신하지 않으면 허가한 것’으로 간주된다. 전력망 구축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역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밀어붙일 경우 ‘제2의 밀양 사태’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다.

관련해 전력망 특별법 입안을 담당했던 유용상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력망정책과 사무관은 “특별법 입안 당시 민주적 정당성·정의 측면에서 제고할 수 있는 내용을 담기 위해 독일의 법을 많이 참조했다”며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나름 강화했고 창의적인 전방위적 지원책을 나름 마련했다. 부족한 부분은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독일은 웹사이트에 128개 전력망 프로젝트 진행 절차,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웹사이트를 방문해 오른쪽과 같이 생긴 독일 지도를 누르면 진행 상황을 누구나 볼 수 있다. (사진=염광희 독일 아고라에너르기벤데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는 웹사이트에 전력망 프로젝트 진행 절차를 독일처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다. 호남 등 지역 주민들은 신규 송전선로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KBS ‘시사기획 창’ 서영민 기자)
그러나 정부 설명에 대해 현장에서는 반론이 이어졌다. 문지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용산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전북 14개 시군을 관통하는 송전망을 건설하면서도, ‘왜 필요한지’에 대해 한전으로부터 납득할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며 “주민들은 ‘민주적 정당성이 담보됐다’는 말에 오히려 분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경락 플랜 1.5 정책활동가는 “전력망 특별법은 주민수용성 측면에서 과거 법보다 후퇴했다”며 “정부와 한전이 주민 수용성 고려 없이 ‘보상을 더 줄테니 따라오라’는 식으로 가게 되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국가적으로 송전선 건설이 필요하다고 하면 주민 한명 한명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BS ‘시사기획 창’ 서영민 기자는 밀양 송전탑 사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집중 문제, 하남 변환소 신설 갈등 등을 취재한 경험을 언급하며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 문제는 단순히 탄소 문제가 아닌 전력망 문제”라며 “모든 것이 수도권에 쏠려 있고 이를 계속 가중시키는 정부 정책 과정에서 주민들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전력망 건설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에너지 전환 정책을 발표하면서 2040년까지 영호남 전력망을 잇고 해상풍력까지 연결해 ‘U’자형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주민수용성 확보가 에너지 전환의 열쇠


전문가들은 기후부 등 정부가 주민수용성을 담보하는 내용을 담아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수용성 확보가 원활한 전력망 확충의 전제이자 에너지 전환의 열쇠라는 이유에서다.

박진희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는 “독일은 입지 선정 단계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낼 수 있고 청문회를 통해 반대 의견까지도 모두 수렴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주민이 참여하는 입지선정위원회를 예외 규정 없이 반드시 운영하도록 하는 등 갈등 예방을 위한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유재국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용인 반도체 산단은 에너지 정책, 공공자산 운영 정책, 지방자치 제도, 기후정책, 산업정책이 만나는 곳”이라며 “기관별로 각자 추진하면 방향성을 잃을 것이기 때문에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기존 계획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혁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처럼 실효성 있는 규제 기관을 마련·설립해 이를 통한 시민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며 “에너지 전환을 추진해 나가면서 시간, 돈 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 규제기관 설립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정 지속가능발전연구센터 대표(시민환경연구소 상임이사)는 “5단계 법적 절차, 전국민을 상대로 한 투명한 정보 공개, 갈등 최소화 제도 등 독일 송전망 확보의 핵심은 주민수용성 확보”라며 “비수도권의 희생을 통해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는 우리나라의 전력망 설비 정책에 대해 이제는 재검토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오르크 슈미트(Georg Schmidt) 주한독일연방공화국 대사도 “탑다운(하향식) 방식으로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분명한 것은 에너지전환은 주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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