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산하기관, 블랙리스트 배제 위해 지원사업도 폐지"

장병호 기자I 2017.12.20 13:24:29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중간브리핑
문체부 산하기관 관련 사례 추가 공개
피해건수 특검·감사원보다 많은 2670건
경찰 개입 의혹 드러나…조사 연장 검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송경동 간사가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빌딩에서 연 ‘대국민 중간브리핑’에서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예술경영지원센터·예술인복지재단 등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 기관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단체를 지원에서 배제하기 위해 공모사업까지 폐지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모사업 폐지 근거로는 송파 세모녀 자살 등 사회적 비극까지 이용했다.

문체부 자문기관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빌딩에서 ‘대국민 중간브리핑’을 열고 그동안의 조사 결과 및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언급하며 지원 사업 폐지

이날 브리핑에서는 예술인경영지원센터·예술인복지재단·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블랙리스트 지원 배제 사례가 추가로 확인됐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15년 ‘문화원-국내 단체 매칭 신규프로그램 개발 지원사업’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극단 마실이 뉴욕문화원과의 매칭사업 대상 단체로 최종 선정되자 ‘중복지원 불가 원칙’을 새로 만들어 사업 자체를 무효화했다.

이는 당시 문체부 지시에 따라 실행됐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관계자는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해당 사업의 경우 심사 대상자 전부가 제외 대상이었다”면서 “심사위원 2명에게 전화를 드려 이러한 상황(문체부의 지원배제 요청)에 대해 상의했지만 모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진술했다.

예술인복지재단은 2014년 ‘현장예술인 교육 지원사업’에 블랙리스트 단체인 민족미술인협회·한국작가회의·우리만화연대·서울연극협회가 선정되자 아예 사업을 폐지했다. 해당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예술인 긴급 복지지원기금 증액안’으로 상정해 집행했다. 당시 예술인복지재단은 정이사회에 해당 사업 폐지를 안건으로 올리면서 ‘송파 세모녀 자살, 배우 우봉식 씨 자살’ 등을 언급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의혹이 제기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블랙리스트 적용 사례도 사실로 밝혀졌다. ‘초록·샘플 번역지원사업’에서는 블랙리스트 실행을 위해 심사표를 조작했다. ‘찾아가는 중국 도서전’ 사업에서는 심사위원회 회의록을 조작해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20일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연 ‘대국민 중간브리핑’에서 공개한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들(사진=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피해건수 특검·감사원보다 많은 2670건

블랙리스트 피해 규모도 감사원 감사(444건)와 특검 수사(436건)를 통해 밝혀진 것보다 많았다. 진상조사위가 블랙리스트와 연관된 12건의 문건을 조사한 결과 지원 배제 등의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피해자수는 1332명(문화예술인 1012명·문화예술단체 320개), 피해건수는 2670건(문화예술인 1898건·문화예술단체 772건)으로 조사됐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문화예술계 인사 및 단체도 박근혜 정부 당시 ‘시국선언 명단’으로 파악한 9473명(단체 포함)보다 2000여명 많은 1만1000여 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문건 현황도 공개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입수해 조사를 진행 중인 문건은 △MB문화균형화전략(2008) △MB국정원 블랙리스트(2009) △박근혜 문화융성기반 정비(2013) △박근혜 국정원 ‘좌성향’ 블랙리스트(2014) △박근혜 국정원 문체부에 선별 통보한 블랙리스트(2014) △박근혜 청와대 문제단체 블랙리스트(2014) △박근혜 문체부 예술과 관리 블랙리스트(2014~2016) △아르코 창작기금 블랙리스트(2014)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관리 블랙리스트(2015) △박근혜 정부 시국선언 명단(2015) △감사원 감사결과(2017) △서울중앙지법 1심 판결 범죄일람표(2017) 등 총 12건이다.

진상조사위는 현재 파악한 명단 및 피해건수보다 더 많은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대통령기록관 문건, 특검 및 국정원 자료, 이명박 정부 시기의 성명서 명단 등을 고려하면 실제 적용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규모는 이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철저한 조사를 위해 ‘캐비넷 문건’으로 불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한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 정비 문건’을 공개할 것을 대통령기록관에 요구했다.

◇“강제·불법조사” 주장 자한당에 “사실 무근” 반박

경찰이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에 관여한 의혹도 포착됐다. 최승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 대한 지원 배제 과정에서 문체부 관계자가 국정원 간부 2명과 경찰청 정보국 경감에게 관련 내용을 문자로 보낸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진상조사위는 “아직까지는 문자로만 경찰의 개입 사실을 확인한 상태”면서 “경찰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에 관련 자료를 제공해 협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가 강제적·불법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원재 진상조사위 대변인 겸 제도개선소위원장은 “진상조사위는 문체부 훈령에 따른 자문기관으로 자발적 신고와 자료 취합을 통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합법적으로 파악한 내용만 해도 이렇게 방대하다.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국민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의 조사 기간은 내년 1월 31일까지다. 송경동 진상조사위 간사는 “3개월 단위로 활동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만큼 문체부와 함께 조사 연장에 대한 고민을 모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내년 1월 중 브리핑을 열고 추가로 확인한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위한 콘퍼런스도 내년 1월 17일과 18일 개최해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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