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회대학교에 따르면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 지인, 일반 시민을 포함한 60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 16일 차려진 빈소에는 이날까지 모두 7850여명이 찾았다.
일반 시민뿐 아니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노회찬 전 의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등을 비롯한 각계 인사도 조문을 표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고 신영복 교수는 교관으로 일하던 1968년 ‘통일 혁명당’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당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는 20여년을 복역했다.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으며 1998년 사면복권됐다.
고 신영복 교수는 감옥 생활에서 느낀 한과 고뇌를 편지와 글로 풀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펴낸 뒤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 - 나의 동양 고전 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다.
1989년 성공회대학교에 임용해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을 강의하던 고 신영복 교수는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직한 뒤에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이어갔다.
고 신영복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으며 투병 생활을 시작했는데 지난 15일 오후 11시47분쯤 향년 75세의 나이로 결국 생을 마감했다.
고 신영복 교수의 시신은 영결식이 끝나고 벽제 시립 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됐다. 장지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