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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혁연대는 판결직후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은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내놓으라’고 논평을 냈는데,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억울한 심정인 두 형제가 이사직까지 내려놓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옥중 경영이 쉽지 않다는 현실론도 있었지만, 떳떳하다면 등기이사로서의 책임까지 회피하는 게 옳을까 하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지금 이 상황은 정공법이 아니면 헤처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회사발전 우선의 원칙과 함께 도의적인 측면에서 책임을 지고 모든 관계사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등기이사 사임을 SK 지배구조의 선진화를 이루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SK는 최 회장이 사퇴한 대부분 계열사 등기이사 직에 후임 사내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사외이사 비중을 확대하는 형태로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각 계열사별 이사회에서 논의해 확정되나, 사외이사 비중을 높여 지배구조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실제로 SK는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1년넘게 수펙스추구협의회(의장 김창근)라는 집단 지도체제를 중심으로 경영해 오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차그룹의 오너 중심 경영과 다른 행보를 보이면서도 무리 없이 회사를 성장시켜 왔다.
재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시가총액에서 기아차를 추월해 국내 5위가 되면서 이해진 의장이 지주사 역할을 하는 네이버의 일부 지분만 가진 지배구조와 혁신 리더십이 관심을 받고 있다”면서 “4대 그룹 중 SK가 제왕적 오너십이 아닌 다른 지배구조로 성공한다면 우리 기업사에 새로운 역사가 열릴 것”이라고 평했다.
이해진 의장의 네이버(035420) 지분율은 4.64%이고 공동 창업자인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지분 3.74%다. 네이버는 모기업이 자회사를, 자회사가 손자회사를 거느리는 수직적 기업 구조여서 기존 재벌의 그물망식 순환출자구조나 총수 일가를 위한 일감몰아주기 등의 우려가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이닉스 인수 같은 조단위 투자는 어려울 듯
SK는 앞으로 김창근 의장 지휘아래 수펙스추구협의회와 산하 전략위원회(하성민 SK텔레콤 사장), 글로벌성장위원회(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커뮤니케이션위원회(김영태 SK그룹 사장), 윤리경영위원회(정철길 SK C&C 사장), 인재육성위원회(김창근 의장), 동반성장위원회(김재열 SK그룹 부회장), ICT기술·성장추진 총괄직(임형규 SK텔레콤 소속 부회장) 등이 협력해 이끈다.
하지만 삼성그룹 최고기술책임자(CTO)출신인 임형규 부회장이 SK하이닉스의 시스템 반도체 등 차세대 성장동력 개발을 챙기나, 적시에 거액의 투자를 집행할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SK는 또 최 회장 수감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 등 중대한 경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에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SK에너지(096770)는 지난해 11월 호주 유류 공급업체인 유나이티드페트롤리엄(UP)지분 인수 예비입찰에 참여하려다 방침을 바꿨다. 국내에선 지난해 STX에너지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가 작년 9월 항소심 선고가 나온 직후 인수전 불참을 선언했고, SK텔레콤(017670)도 연초 국내 2위 보안경비업체인 ADT캡스 인수를 중도에 포기했다.
그룹 관계자는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보고를 받겠지만 서류 몇 장만으로 대규모 인수합병을 결정할 수 없다”면서 “인수합병 시장에서 정보력과 투자 타이밍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당분간 인수합병 시장내 SK 입지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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