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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깡통전세`주의보

이진우 기자I 2012.07.18 17:53:49

건물주 빚 감당못하자 경매로 처분
순위밀려 보증금 잃는 세입자 속출

서울 금천구에 사는 여성 직장인 A씨는 최근 전 재산인 전세금 7000만원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0월에 전세로 들어간 원룸주택의 건물주가 은행 빚을 갚지 못해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A씨는 전세 계약을 할 때 등기부 등본을 떼어보고 건물주가 은행에서 2억원을 빌렸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건물 시가가 6억원 가까이 된다는 중개업자의 말에 안심하고 7000만원에 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그 원룸 건물에 A씨와 비슷한 세입자가 12명이나 됐고 이들이 모두 6000만~7000만원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경매로 집이 팔릴 경우 낙찰금액은 은행에 제일 먼저 돌아가고 남으면 그 집에 전입신고를 한 순서로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내준다. 세입자 12명 가운데 11번째로 입주한 A씨는 전세금을 받지 못할 확률이 거의 100%다. 은행빚 2억원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 원룸 건물은 은행빚 2억원에 세입자들에게 진 전세빚 7억원이 더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원룸 건물에 전세로 들어갔다가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는 낭패를 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부터 불었던 원룸 열풍으로 건축비를 은행대출과 전세금으로 조달했던 집주인들이 대출금을 못갚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생긴 신풍속도다.

18일 지지옥션에 따르면 수도권의 다가구주택 경매 건수는 올해 들어 매월 40~50건으로 지난해에 비해 두 배 가량 늘었다.

금천구의 한 중개업자는 “자기 돈은 한 푼도 없이 은행 대출과 전세금으로 원룸을 짓고 남는 돈으로 다른 원룸을 또 지어 임대하는 업자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을 하면서 집주인이 금융권에서 얼마를 빌렸는지만 등기부 등본으로 알 수 있을 뿐 다른 세입자들로부터 전세금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주민센터에 가서 그 집으로 주소를 이전한 세입자가 몇명인지는 알아볼 수 있지만 구체적인 임대 조건은 알 수 없는 것이다. A씨의 경우가 발생했을 때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중개사고를 주장하며 보상금을 요구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역시 일부를 보상해주는 데 불과하고 번거로운 소송을 거쳐야 한다.

공인중개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집주인이 다른 방들을 전세로 임대했는지 월세로 임대했는지 어떤 조건에 임대했는지는 공인중개사들도 집 주인에게 물어보는 수 밖에는 없다”면서 “전세 세입자가 많으면 방이 나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 집 주인이 거짓말을 할 경우는 속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가구주택 임대차정보 공개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확인 체계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입자들이 확정일자를 받기 위해 주민센터에 임대차 계약서를 들고 가 전입신고를 하는데 그 때 계약서에 적힌 전월세 보증금 정보를 기록해 뒀다가 그 집을 임대하려는 다른 사람들이 그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초부터 주민센터를 통해 확보된 임대차정보를 공개하고 있지만 다가구 주택의 경우 동별로 몇 평형이 얼마에 거래됐는지 정도만 나와 있어 특정 건물의 임대차 현황을 알고 싶어하는 세입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국토해양부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특정 건물의 임대차정보는 사생활문제와 결부될 수 있어 공익을 위해 이를 공개하려면 임대차보호법 등 법령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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