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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진해운의 침몰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오너 일가의 경영 전문성에 대한 화두를 던졌고 무리한 확장에 따른 위험 분산의 중요성을 그리고 정부의 기간산업 업종에 대한 무지에 대한 어리석음을 남겼다.
정부와 금융권의 무지는 국내 해운업계를 격랑에 휩싸이게 했고 나아가 한국 경제를 위기로 몰았다. 이미 수 천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투자자나 관련 업계가 입을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경영을 몰랐다, 비극은 거기서 시작됐다
‘수송보국’의 꿈을 품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1977년 한진해운을 설립한다. 이미 10년 전 창업한 대한해운으로 실패를 맛본 그였기에 절치부심으로 한진해운을 운영했고, 1988년 대한상선과 합병하는 등 사세를 키워 1997년에는 세계 7위의 자리에 회사를 올려놓는다.
2003년 회사 경영을 이어 받은 창업주의 3남 조수호 회장은 그 동안 받아 온 경영수업을 바탕으로 회사를 잘 꾸려갔지만, 2006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갑작스레 아내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을 맡게 된다.
‘며느리 경영’은 최 회장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2003년 현대그룹에서 정몽헌 회장 사후 경영권을 이어 받은 현정은 회장 사례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국내 해운업의 두 대표 기업을 며느리 출신이 이끌게 된 상황. 최 회장은 해운업 호황기에 취임한 덕에 일각의 비판에도 경영능력이 크게 시비가 되지는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재 재벌 체제에서 계열사를 각 집안끼리 ‘나눠먹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런 것 같다”며 “최 회장이 아니라 다른 형제가 경영했거나, 아니면 빨리 내·외부의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맡았다면 결과가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는 평을 내놨다.
◇호황 때는 모른다, 비극이 어떻게 올 지
해운업은 무역 규모의 확대와 세계 경제의 호황 속에 계속 성장해나갔다. 행복은 영원할 것만 같았고, 최 회장은 선박을 직접 보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이에 대한 요금(용선료)을 지불하는 방식을 도입한다. 비극의 씨앗이었다. 2010년대 초반 한진해운은 호황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내부 전망에 따라 시세보다 5배나 비싼 용선료를 주고 선박 계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글로벌 경기 침체는 해운업에도 역시 그림자를 드리웠다.
호황기에 무리하게 규모를 늘렸다가 갑작스런 불황에 위기를 맞는 기업은 언제나 있어 왔다. 과거 재계 4위였던 대우그룹은 IMF 금융위기에 스러졌는데, 당시 대우그룹의 자본대비 부채비율은 800%에 달했다. 기아차, STX, 웅진 등 여러 그룹이 그렇게 해체됐다. 한진해운은 몰랐다. 용선료가 밀려 선박이 압류될 줄은, 기름값을 내지 못해 굴욕을 당할 줄은.
◇정부도 몰랐다, 더 큰 비극을 만들고 있는 줄
비록 경영상의 실책이 있었다고는 하나, 정부의 처리방식은 파국의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 해운업계의 불황에 따른 국내 해운업계 구조조정 대상으로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이 청산 대상으로 결정한 곳은 규모가 더 크고 시장점유율이 높은 한진해운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식인데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규모가 더 작은 현대상선을 살리고, 여파가 더 클 것이 확실한 한진해운을 정리한다는 결정이 나오자 관련 업계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해운업은 수출 산업으로 경제를 유지해나가는 우리나라에 있어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국내 수출입 화물의 99.7%가 해운을 통해 드나들고, 직간접적인 고용 창출효과만 해도 약 50만명에 이른다. 빅딜 방식을 비롯해 여러가지 대안이 제기됐지만 정부의 판단 근거는 ‘총수의 사재 출연 여부’에만 맞춰졌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청산 대상 결정에 따른 파급효과보다 사재 출연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미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라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회계법인의 기업가치 평가결과는 자연히 청산가치가 더 높다는 결론으로 나왔다. 하지만 현재 해운업계의 출혈경쟁(치킨게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세계 1위 해운사인 A.P묄러-머스크조차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고 지난해 약 2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터였다. ‘바다의 가치’를 모르는 정부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국내 1위 해운사를 그렇게 내동댕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