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사이에서 확산하는 통화가치 떨어트리기 경쟁이 수출에 도움은 안되는 반면, 수입량을 줄여 전 세계 무역규모만 줄이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실제 지난 석달 동안 브라질 수입량은 1년 전보다 13% 감소했다. 지난 1년간 브라질 헤알가치는 37% 급락했다. 러시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등도 수입물량 감소했다.
반면 수출이 늘어나는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통상 통화가치를 떨어트리면 수출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출에 도움이 되는데, 이런 공식이 들어맞지 않은 것이다.
신흥국 통화가치는 작년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하락 중이다. 지난해 6월 이후 러시아 컬럼비아나 브라질, 터키, 멕시코, 칠레 통화는 20~50%가량 하락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1998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내려간 상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한데다 경제가 흔들리면서 신흥국에 유입됐던 글로벌 자본이 역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트리려는 움직임도 한몫했다. 특히 지난달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위안화 가치 하락)하면서 신흥국들은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떨어트리는 분위기다. 실제로 베트남은 동화 변동폭을 확대하고 인도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치는 식으로 환율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그렇지만 통화가치를 끌어내려도 수출에 별 도움이 안 되고 되레 무역량만 감소시킨다는 게 FT의 분석인 셈이다. 네덜란드 경제정책 분석국이 지난주 발표한 세계 무역 규모는 지난 1분기에 전분기 대비 1.5%, 2분기는 0.5% 각각 위축됐다.
무역 규모가 줄면 수출 의존도가 큰 신흥국 경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 살길을 위해 환율을 떨어트렸지만 모두가 패자인 게임이 되는 셈이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은 “(신흥국이) 경쟁적 통화가치를 떨어트리며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 thy neighbour)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근린 궁핍화 정책은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트려 이웃 나라 경제에 타격을 주는 행위다.
닐 셰어링 캐피탈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나 2001년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 때도 비슷한 모습이 목격됐지만, 곧 정상화했다”면서 “지금은 환율전쟁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고 신흥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져 수입감소 영향이 훨씬 커졌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