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애초 그들에게 NLL은 관심 밖이었다.”
지난 한 달간 정치권을 뒤흔든 NLL 포기 논란이 황당한 사초(史草) 실종 사태로 귀결된 상황을 취재하며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 하나다.
헌법까지 고칠 수 있는 ‘개헌선’(재적의원 2/3 이상)을 가볍게 넘으면서 법적 요건은 충족했지만 대화록 열람·공개 합의는 법 취지인 ‘국가안보’ 보다는 제각각의 ‘당리·당략’이 만들어낸 야합이었다.
새누리당 강경파의 명분은 ‘NLL포기 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시나리오’(박영선 의원)라는 야당의 주장을 반박한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국정원 국정조사 정국을 공학적으로 만회해보자는 성격이 짙었다.
민주당 강경파의 명분도 여당의 NLL포기 주장이 국정원 의혹을 물타기하기 위한 의도라 보고 반격한다는 차원이었지만, 대선패배 책임론 속에 외곽으로 내몰린 자신들에 대한 방어본능이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모든 상황을 지우고, 정치권이 지금까지 해온 주장들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해도 이해되지 않은 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토록 NLL 사수를 강조하는 새누리당 강경파가 기어이 ‘전직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을 고집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북한에게 ‘전임정부가 NLL을 포기했다고 믿으니 다시 협상하자’고 제안하고 싶은 것인가. ‘피로 지켰다’는 서해바다 NLL을 대선정국에서 피 튀기는 정쟁의 희생양으로 먼저 끌어들인 건 그들이다. 민주당내 강경파, 이른바 ‘친노(친 노무현계)’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모시던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두려워 자신들이 먼저 NLL을 사수해야한다는 입장표명을 못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여당 대표가 제안한 공동선에 왜 쉽사리 합의하지 못하는가.
무엇보다 대화록을 열어보자고 맨 앞줄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문재인 의원의 행보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당초 민주당내에서도 회담록 공개에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문의원의 ‘전면공개론’으로 대화록 공개가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록 실종 사태가 발생한 현 상황에서 그는 책임 있는 설명과 입장표명 없이 마치 3인칭 관찰자의 화법으로 이번 사태를 넘기려 하는 것 같다. 문 의원은 정상회담 대화록이 작성되고 국가기록원에 이관됐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행보는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민주당 내에서도 문 의원의 책임론을 강도높게 제기할 정도다.
결국 정치권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론을 기대하며 대화록을 꺼내보자고 했지만, 정작 국민들은 다시 한번 ‘지독한 정치 혐오’를 경험하며 고개를 내젖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후진적인 한국정치권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