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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는 뜨거운 물을 틀 때 이물질이 많이 나오는데 시흥시는 찬물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다며 마셔도 된다고 안내해 주민 건강·안전을 내팽개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민, 이물질 성분 몰라 더 불안
24일 은계지구 주민 등에 따르면 은계공공주택지구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2021년 5월 은계 센트럴타운 주민과의 간담회를 한 뒤 해당 주민 집에서 사용한 수돗물 필터를 수거했다. LH는 필터에 걸러져 있는 이물질의 성분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주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LH에 수차례 공문을 보내 성분 조사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LH는 ‘무대응’으로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센트럴타운 주민 A씨는 “LH의 성분 검사 결과를 제공받지 못했다”며 “어떤 독성 물질이 포함됐기에 결과를 숨기는 것이냐. 주민을 무시하는 LH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흥시는 한참이 지나서야 필터 성분 검사에 나섰다. 해당 이물질 민원은 2018년 4월 처음 신고됐으나 시는 5년이 지난 올 3월이 돼서야 관망진단 용역업체인 ㈜한국종합기술에 이물질 성분 검사를 요구했다. 검사 시료는 은계지구 아파트 가정집 8곳에서 수거한 수돗물 필터였다.
㈜한국종합기술은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을 통해 검사한 뒤 시흥시에 “일부 지점에서 은계지구 상수도관인 강관의 주성분으로 예상되는 물질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강관의 주 성분인 탄소, 규소, 망간, 니켈, 티타늄 등이 필터 이물질 성분으로 나온 것이다. 분석 결과에서 탄소의 비중은 최대 86.7%였고 규소는 최대 10.6%를 차지했다.
시흥시는 이번 검사 결과로는 이물질 성분이 수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고 해당 수돗물의 수질검사 상 ‘적합’으로 나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주민에게는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시가 매달 은계지구에서 시행한 수질검사는 찬물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뜨거운 물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은계지구 아파트에서는 찬물보다 뜨거운 물을 틀 때 필터에 까만 이물질이 더 많이 걸러진다. 주민은 필터에서 걸러진 이물질의 유해성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불안해한다.
◇LH 소송 먼저, 주민 안전은 뒤로 밀려
이 상황에 시흥시는 이물질 민원 대처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LH 핑계를 대면서 원인 조사 등을 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시흥시가 5년간 이물질 민원을 해결하지 않고 안전하다는 말만 한다”며 “주민 건강·안전을 내팽개친 것 같다”고 비판했다
LH는 수돗물 민원이 많은 센트럴타운, 우미린더퍼스트 등 5개 단지의 상수도관에 정밀여과장치(필터)를 설치하기로 했으나 최근 센트럴타운을 제외한 4개 단지만 설치를 완료했다. 센트럴타운을 제외한 것은 LH가 상수도관 시공사인 계룡건설산업과 자재 납품업체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감정평가를 위해서였다. 소송 증거 마련을 위해 센트럴타운 주민의 수질안전이 뒷전으로 밀린 셈이다.
LH 경기남부본부 관계자는 “2021년에 수거한 필터의 성분 검사는 완료했지만 검사 결과가 명확하지 않아 공개할 수 없다”며 “해당 필터에서는 35개 물질이 검출됐는데 이 중 4개는 상수도관 관련 물질이었고 2개는 열교환기에 의한 물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머지 29개는 원인미상 물질로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어 “법원 소송에서 감정평가를 하면 더 자세한 성분 검사 결과가 나올 것이다”며 “이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관련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 공개 여부는 시흥시와도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LH는 10월까지 센트럴타운에도 정밀여과장치를 설치하고 나머지 8개 단지는 연말까지 동일한 조치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원인 조사와 대책 수립 용역은 이달 안에 착수할 방침이다.
시흥시는 “LH가 원인 조사 용역을 할 것이기 때문에 시가 대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밝혔다. 또 “수질검사는 먹는 물 대상인데 뜨거운 물은 먹는 물로 보지 않아 찬물만 검사한다”며 “가정집에서 뜨거운 물을 틀려고 열교환기로 수돗물을 데우면 정수장에서 화학품을 처리한 성분이 없어져서 정확한 검사가 안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LH는 센트럴타운의 수돗물 이물질이 열교환기 가스켓(고무패킹) 불량자재와 상수도관 내부코팅제 박리(벗겨진 조각) 등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