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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거지’ 양산하는 환불정책, 쿠팡이츠는 뒷짐만

윤정훈 기자I 2021.03.17 11:11:55

쿠팡이츠 환불정책 악용한 ‘쿠팡거지’ 증가에 라이더 피해 늘어
고객센터는 라이더가 잘못 배송한 음식 수거할 수 없도록 안내
라이더가 사진 등 스스로 입증 못하면 음식값 지불해야
교통사고 발생해도 쿠팡이츠 책임 부담 없어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지난 13일 쿠팡이츠 라이더(쿠리어) A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 음식을 배달했는데, 고객이 받지 못했다고 신고를 한 것이다. 고객센터는 30분 후 A씨에게 연락해 음식값을 배달수수료에서 차감한다고 통보했다. A씨는 배달했던 곳을 다시 찾아갔지만, 음식도 제자리에 없었다. 알고 보니 누군가 A씨가 배송한 이후에 음식을 가져간 것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쿠팡이츠의 환불정책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배송지를 실제와 다른 곳으로 기재하는 방식이 주로 쓰인다. 고객은 쿠팡이츠 고객센터에 음식을 수령하지 못했다고 연락해 환불받는다. 이후 음식까지 찾아와서 무료로 먹는다. 쿠리어들은 이런 고객을 ‘쿠팡거지’라 부른다. 돈을 내지 않고, 얌체같이 음식만 먹는다 해서 붙인 별칭이다.

강남의 한 오피스텔 CCTV에 찍힌 절도범 추정 남성의 모습. 신원 미상의 남성이 잘못 배달된 쿠팡이츠 음식을 가져가고 있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쿠팡거지가 계속해서 생겨나는 이유는 쿠팡이츠의 정책 때문이다. 현재 쿠팡이츠는 고객이 음식을 받지 못했다고 할 경우 증거사진이 없으면 쿠리어의 귀책사유로 판단한다. 또 고객의 주소를 알려주지 않아서 쿠리어가 자신이 변상한 음식을 다시 찾아올 수도 없다. 개인정보 보호가 이유다. 쿠리어가 실수를 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정책의 허점을 악용하는 쿠팡거지는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여기에 한 번 당하면 쿠리어는 음식값과 배달 시간까지 날리기 때문에 2시간가량 손해를 보게 된다. 가게 입장에서도 고객에게 음식이 매끄럽게 전달되지 않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쿠팡이츠가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은 이를 막기 위해 라이더가 고객 주소지 사진을 의무적으로 찍도록 하고 있다. 라이더가 실수를 했을 경우 음식도 수령할 수 있다.

A씨의 지인인 B씨는 “A씨가 경찰에 음식을 가져간 사람을 신고했다”며 “예전에도 이런 일이 많았는데 쿠팡이츠는 책임지지 않고 라이더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쿠팡거지 피해자인 C씨는 “주소를 착각해서 배송 실수를 했는데 나중에 찾아가보니 고객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면서 “제가 음식값을 변상했는데, 고객센터는 라이더에게 주소를 알려주지 않고 고객에게 음식을 먹게 했다”고 토로했다.

쿠리어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쿠팡이츠는 뒷짐만 지고 있다. 쿠리어가 이에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쿠팡이츠는 배상뿐 아니라 교통사고 등에 대해서도 라이더에게 불리한 약관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 약관상으로는 배달 파트너가 교통사고가 나면 치료비 등 책임을 본인이 져야 한다. 쿠팡이츠 배송 파트너 이용약관 16조 2항에는 “회사는 이에 대해 어떤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며 “회사의 고의·과실이 입증된 경우에 회사가 책임을 분담한다”고 돼 있다.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거래 약관 시정 등을 지시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반면 이와 관련한 배달의민족 약관은 좀 더 상세하다. 배민커넥터(라이더) 배송대행 약관 22조(안전사고의 책임 및 통보)에는 “배민커텍터는 배달 업무 수행 중 교통사고, 배달물품의 분실 등 중요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 지체 없이 회사에 그 내용을 통보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또 시간당 1770원의 ‘이륜차 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고 있다.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는 “쿠팡이츠는 라이더를 보호하는 정책이 거의 없다”며 “스스로 사진을 찍어서 해명해야 하고, 교통사고 책임도 라이더가 모두 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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