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황수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없이 135조원에 달하는 복지공약을 실현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부가가치세 매입자 납부제도로 연간 최대 7조원 이상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와 주목된다. 또 집권 초기에 비과세·감면 제도의 축소를 강력히 추진, 5년간 약 15조원의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세제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부가세 매입자 납부제도는 제도를 뜯어고쳐야 하는 만큼 실현가능성이 작다며 사실상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부가세, 소비자가 직접 내게 해 누락 원천 봉쇄..“年 최대 7조 이상 세수 확보”
5일 서울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제47회 납세자의 날’ 기념 정책토론회에서 김재진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건값에 붙는 부가세를 소비자가 직접 내게 하는 ‘부가세 매입자 납부제도’를 전면 도입할 경우 연간 최대 7조원 이상의 세수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부가세는 소비자가 물건을 사면서 물건값과 부가세를 함께 판매자에게 주면 판매자는 물건값은 자신이 갖고 부가세를 국세청에 내는 형태다. 간접세로 세금을 내는 ‘납세자’와 실제 세금을 부담하는 ‘담세자’가 달라, 소비자는 세금을 냈지만 납세자인 판매자가 부가세를 체납하게 되거나 탈루하는 ‘배달사고’가 생길 공산이 크다.
실제 지난 2011년 기준 부가세 체납비율은 11.3%로, 소득세 체납비율 9%, 법인세 2.6%에 비해서 확연히 높은 수준이다. 이론적 부가가치세 징수총액과 실제 징수금액과의 차이를 뜻하는 ‘VAT Gap’은 약 11조2000억원에 달하고, 지하경제로 인한 탈루를 감안할 때 그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될 것으로 보인다.
부가세 매입자 납부제는 이같은 탈루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결손 및 체납발생을 원천적으로 방지해 세율 인상 없이도 상당한 규모의 추가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연구위원 설명이다.
가령, 사업자와 소비자간 거래(B2C)에서 소비자가 신용카드로 대금을 지급하고 물품을 샀다면 신용카드 회사가 부가세를 제외한 금액만을 사업자에게 주고 나머지 부가세를 부가세 정산은행에 대리납부하도록 해 중간 누락을 막자는 구상이다.
김 연구위원은 “만일 전면적으로 시행된다면 세수증대효과는 연간 최대 5조3000억원에서 7조1000억원에서 플러스 알파(+α) 까지도 기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부정적 입장이다. 김형돈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관은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이 방식을 도입하게 되면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온다는 측면에서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체납원인을 봐도 경제사정이 나빠 납부여력이 없어 생긴 측면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납부방식을 매출자(사업자)에서 매입자(소비자)로 바꾼다고 해서 얼마나 바뀔까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관리 측면에서의 어려움도 거론했다. 그는 “제도개선에서 행정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행정비용)그 이상이 (세수로)들어올지 아닐지 자신없다”고 말했다.
현재 금(金)지금에 이어 동(銅)스크랩에 대해 매입자 납부제를 해보자는 논의 역시 현금거래를 선호하는 현상이 발생하거나 납세 협력비용이 커지는 문제 때문에 도입이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김갑순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또한 “행정적 비용과 세수확보 순이익의 트레이드 오프(trade-off)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창남 세무학과 교수는 B2C 거래에는 매우 효율적이라면서도 사업자와 사업자간 거래(B2B)의 경우 귀금속, 중고품 고철수집업 등에 제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대기업 대표로 참석한 전수봉 대한상공회의소 조사1본부장은 “현행 조세체계의 틀을 유지하면서 세수를 확보하는 좋은 방안이라 생각한다”며 “기업의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카드사, 은행 등 금융기관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 만큼 금융기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인센티브도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과세·감면 축소로 15조원 세수 확보
조세연구원은 또 정권 초 비과세·감면 제도 축소를 강력히 추진, 향후 5년 동안 발생할 국세감면액 150조원의 10%인 15조원 정도의 조세지원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학수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비과세·감면 제도가 연 30조원 수준의 세수손실을 유발할 뿐 아니라 고착화되고 있다”며 “조세제도의 효율성과 조세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세감면 중 ‘비망’ 항목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봤다.지난해 국세감면액(29조7천억원)의 61.7%(18조3천억원)는 조세지출이, 37.5%(11조1천억원)는 비망이 차지했다.
김 연구위원은 “10대 비망항목중 9개가 소득공제나 비과세의 형태여서 고소득층에 유리하다”며 “감면 제도를 소득공제 중심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형돈 국장은 “올해 비과세·감면을 정비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다만 비과세·감면의 대상은 중소기업, 농어민 등 취약계층으로 최대한 노력을 해보겠지만 이해관계가 걱정된다”며 “관련된 당사자들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안창남 교수는 “속칭 세율인상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비과세·감면 조항 하나 없애는 것으로 이해관계가 그만큼 얽혀 있다”며 “오히려 내·외국인을 차별하는 비과세·감면 조항을 시급하게 없앨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주식양도차익 과세를 확대하고, 부가세 면세거래를 과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