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화단만 망쳤나

조용만 기자I 2004.11.15 17:48:55
[edaily 조용만기자] HSBC가 제일은행 인수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으로 논란을 낳았던 제일은행 매각은 `불난 집의 화단`에 비유돼 왔습니다. 불을 끄는 과정에서 화단이 좀 망가진 것은 불가피했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입니다. 매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국제부 조용만 기자는 과연 화단만 망친 것인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최근 제일은행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세계 1위 금융그룹인 씨티가 한미은행을 인수한데 이어 2위 그룹인 HSBC가 제일은행 대주주인 뉴브리지에 인수의사를 타진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언론들은 한국이 다시 한번 세계 주요은행들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마저 제기합니다. 15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씨티에 이어 HSBC가 한국시장 진출에 나서면서 스탠다드차타드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경쟁은행들이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들 경쟁사들은 제일은행 인수 협상에 가세할지, 아니면 론스타에 인수된 외환은행이 매물로 나올때까지 기다릴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머징마켓에서 굳건한 위치를 갖고 있던 스탠다드차타드의 경우 세계 1,2위 은행이 중국에 이어 한국시장 공략을 본격화하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제일은행 인수가 이처럼 국내외 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오고 있지만 최대주주인 우리 정부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답답한 모습입니다. 제일은행의 지분구조는 현재 예금보험공사가 48.49%, 재경부가 2.95%로 정부가 51%이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권은 48.56%를 가진 뉴브리지가 갖고 있습니다. 인수협상도 당연히 뉴브리지와 진행되고 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HSBC와 뉴브리지간에 최근 수주일간 물밑협상이 진행돼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부의 반응은 `대강 얘기는 들었다`는 수준입니다. 협상성사를 위해 알고도 모른체 하는 건 아닌 듯 합니다. 1997 외환위기이후 IMF측은 부실금융기관의 대명사로 지목됐던 제일·서울은행 매각을 요구했고 당시 국민의 정부는 풋백옵션 등 각종 불리한 조건을 수용하며 제일은행을 미국계 투자펀드에 넘겼습니다. 제일은행은 매각된뒤에도 계속 골칫거리로 남았습니다. 뉴브리지가 인수한 자산이 부실화될 경우 정부가 되사준다는(풋백옵션) 조건때문에 매각후에도 매년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습니다. 정부가 제일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총 17조6000억원, 이중 회수한 자금은 10조3000억원으로 7조원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제일은행 매각 당시 주가가 1만5000원이 되면 투입된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정부가 IMF구조조정 과정에서 제일은행을 헐값(5000억원)에 팔아넘긴 책임 논란은 이제 식상한 소재가 됐습니다. IMF 당시 제일은행 매각은 불가피했고 당시 상황에서 전후사정을 꼼꼼히 따지기도 힘들었다는 것이 관료들의 항변입니다.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매각협상을 주도했던 이헌재 부총리는 "소방관들이 목숨걸고 불을 꺼놨는데, 주인은 왜 화단을 망쳤느냐고 질책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제일은행 매각을 통해 급한 불을 끈 것인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일은행 매각이 국제적 관심사로 부상한 이 시점에서 나타난 손익계산서를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과연 화단만 망친 것으로 끝낼 논란인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번 매각논의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드래그 얼롱(Drag Along)` 조항 때문입니다. 뉴브리지가 보유 주식의 30% 이상을 매각할 경우 예보와 재경부도 같은 비율의 주식을 동일 가격에 매각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정부는 50%이상의 대주주지만 뉴브리지가 결정한대로 매각에 참여할 권리밖에는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약속한 국제적 신인도 회복과 선진금융기법 도입 등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랩니다. 뉴브리지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비용과 자산을 줄였지만 이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카드대란 등 금융권 전체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제일은행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들은 번번히 빠져나가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라는 좋지않은 인상만 남겼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1만5000원~1만7000원 수준에서 매각가격이 결정될 경우 뉴브리지는 200%이상의 투자수익을 회수하지만 국민의 세금중 5조원 정도는 회수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대로 매각이 결정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5조원을 값비싼 수업료로 치르게 되는 셈입니다. IMF를 불러온 정부관료의 정책실패에 대해 법원은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정부는 스스로 자초한 급한 불을 끄면서 화단을 조금 망쳤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단을 망친뒤 사후에라도 이를 복구할 수 있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매각논의 과정에서 다시 드러났습니다. 정부가 화단만 망쳤다는데 여러분은 동의하십니까?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