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가능성에 금융지주회사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우리금융지주(053000)를 제외하면 KB금융(105560)지주, 신한금융지주(055550), 하나금융지주(086790) 등 3대 지주사에는 사실상 오너라고 할 수 있는 지배주주가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이사후보추천, 주주제안 등으로 목소리를 높이면 이들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나 경영전략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골드만삭스의 지분매각으로 하나금융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하나금융이 추정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7.90%로 2대 주주인 얼라이언스번스틴(5.36%)보다 617만주를 더 가지고 있다. 전날 종가기준으로 계산하면 국민연금이 2600억원어치 이상을 더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금융은 과거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를 등기임원(이사)으로 임명해 경영에 참여시키기도 했으나 지금은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요 주주의 추천으로 재직하고 있는 등기임원이 없다. 만약 국민연금이 이사 추천 등의 방식으로 경영에 직접 참여할 경우 하나금융의 경영진 구성이나 경영전략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는 것.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가능성에 경계심을 내비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 회장은 전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연금이 재무적투자자(FI)로서 주주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다만 경영자율성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기관투자자들처럼 국민연금도 단순 지분투자자로 남아달라는 당부의 뜻이 담겨있다는 게 금융권의 해석이다.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기는 KB금융이나 신한금융도 마찬가지. 국민연금은 지난 2009년말 KB금융의 회장공모 과정에서 잡음이 일자 KB금융에 사외이사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했고, 지난해 신한사태 당시 "은행권 지배구조의 문제를 두드러지게 보여준 사례"라며 주주권 행사 가능성을 피력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2월말 현재 KB금융의 지분 5.02%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ING은행에 비해 1800주 가량 보유 주식수가 적지만, 그동안 꾸준히 지분을 매입해 지금은 지분율이 ING은행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ING은행은 현재 KB금융에 등기임원(사외이사)를 파견해놓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지분확대는 KB금융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본다는 의미로 나쁠 건 없다"면서도 "그러나 주주권 행사 문제는 국민연금이 결정할 문제라 우리가 답하기는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신한금융의 경우 국민연금은 BNP파리바에 이은 2대 주주(6.11%)다. BNP파리바와 지분율 차이가 0.24%포인트에 불과하다.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는 것.
게다가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 최근 공적 연기금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지난해 신한사태 당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일본계 주주 등과 달리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은 불합리한 사례였다"며 신한금융을 직접 지목해 향후 국민연금의 움직임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신한이 이렇게 성장한 배경에는 다른 회사와 달리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게 큰 힘이 됐다"며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결국 정부의 입김이 그만큼 커진다는 얘긴데, 이로 인해 신한만의 문화가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면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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