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민정 기자]외교통상부가 이른바 ‘김영환 고문’ 건으로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한일 군사정보협정의 국무회의 밀실 처리 시도로 ‘국민을 기만한 정부’라는 불명예를 얻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더니이번엔 나라 밖에서 국민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데도 늑장 대응에다 상대국의 눈치보기로 일관하며 우리 국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혀 114일 동안 구금돼 있다가 강제 추방된 북한 인권 운동가 김영환씨는 체포된 지 한달이 지나서야 처음 영사를 만날 수 있었다고 폭로했다. 국제법상 엄연히 보장된 영사 접견권을 두고 정부가 미적거리며 늑장을 부린 것은 직무 유기로 밖에 볼 수 없다.
외교부가 영사 접견시 고문 부분을 인지했음에도 외면한 것이나 나아가 김씨에게 고문 폭로에 대해 신중해 달라고 요구를 한 것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쯤 되면 고질병에 가까울 정도로 몸에 밴 안이한 대응자세와, 제1 무역 상대국이자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는 강대국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렸거나 나아가 알아서 긴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올 법하다. 자국민 인권 보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강대국 논리대로 사태무마에 급급한 외교부에 과연 존재의 이유가 있을까.
외교부가 우리 국민 보호에 소홀히 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 초에도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 일부 직원들이 현지에 억류된 탈북자들에게 반말과 욕설 등 심한 인격적 모독을 가한 것이 드러났다. 엄연한 ‘예비 한국인’으로 볼 수 있는 이들이 한국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도록 일선에서 지원해야 할 외교부가 오히려 반인륜적인 행태를 저지른 것이다.
외교부는 올초 핵안보 정상회의의 유치가 국격을 드높였다며 올 한해 최고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그 때문에 정상회의 성과 등 사후 홍보에도 열을 올리는 호들갑을 피웠다.
이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국격 있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현실에선 자국민이 해외에서 인권 침해를 당했을 때 뒷짐지고, 상대국에 문제제기 조차 하지 못하는 자존심 없는 국가임이 잊을만 하면 드러나고 있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격이라는 것이 말로 떠들어서 세워지는 게 아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나라로 부터 충분히 합당한 대우를 받을 때라야 비로소 그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재외국민의 보호와 지원은 외교부를 존재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그 책무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중국 측에 김영환씨의 가혹행위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부당한 처사가 드러날 경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그 첫 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