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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 의존하던 철스크랩 분류, AI 플랫폼으로 해결”

김은경 기자I 2023.07.18 15:35:40

■ 이지훈 JH데이터시스템 대표 인터뷰
세계 최초 ‘AI 철스크랩 플랫폼’ 개발
철강 ‘탄소배출 저감’ 핵심 자원인데
분류·관리체계 미비에 가격도 제각각
딥러닝으로 등급별 97% 정확도 달성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눈을 의심했습니다. 대기업에서조차 그 많은 철스크랩을 직원들이 일일이 눈으로 검수하고 있어서요.”

인공지능(AI) 기반 철스크랩 플랫폼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지훈 JH데이터시스템 대표는 2017년 현대제철 인천제철소에 방문했을 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철스크랩(고철)은 산업 폐기물 취급을 받았을 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철강업계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철스크랩이 철강 생산의 필수 원자재로 떠오른 최근에서야 그 중요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철강사들은 궁극적으로 고로에서 화석연료 대신 수소로 철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의 완전한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전 탄소 발생을 줄일 과도기적 노력으로 철스크랩을 원료로 사용하는 전기로 제강 비중을 높이고 있다. 철강 1톤(t)을 생산할 때 철광석 대신 철스크랩을 원료로 사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 75%, 폐기물 80% 감축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스크랩은 철강재를 생산·가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가발생·가공 철스크랩과 자동차·가전제품·선박 등에 쓰인 뒤 폐기 처리된 노폐 철스크랩으로 나뉜다. 후자가 국내 철스크랩의 약 70%를 차지하는 만큼 재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잘 분류하고 선별하는 체계화 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철스크랩이 ‘원자재’가 아닌 ‘폐기물’로 분류돼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급·활용은 물론 산업 생태계 조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발생원과 수집 지역이 광범위해 미처 회수하지 못하거나 경제성이 떨어지는 철스크랩은 그대로 폐기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JH데이터시스템의 AI 철스크랩 플랫폼 개발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지훈 JH데이터시스템 대표가 지난 11일 경기도 하남 JH데이터시스템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이 대표는 18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현대제철 인천공장에 가보니 새벽 4~5시부터 철스크랩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들이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은 곳을 계속해서 오가고 있었다”며 “트럭에 실린 철스크랩은 폐쇄회로(CC)TV와 직원들의 눈에 의존해 검수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삼성SDS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정보기술(IT) 전문가로 현대제철의 지게차 안전 시스템 적용을 위해 공장에 방문했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가 전부 제거되지 않은 채 수거된 철근과 자동차 문짝 등이 뒤섞인 상태의 철스크랩을 사람이 검수하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려 비효율적이었다”며 “가격 책정도 어떤 트럭은 500만원, 다른 트럭은 350만원으로 제각각이라 제대로 된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구글 텐서플로(Tensorflow) 엔진을 기반으로 딥러닝이 가능한 AI 기반 철스크랩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라이다(LiDAR) 센서와 카메라로 트럭에 실린 철스크랩을 스캔하면 AI의 딥러닝 추론·분석 프로세스가 하나의 사진을 400개 구간으로 나눠 학습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한 층을 스캔해 인식이 완료되면 다음 층을 쌓는 식으로 트럭 하나를 모두 채우는 동안 검수를 마칠 수 있다.

JH데이터시스템이 현대제철과 2017년 8월부터 2018년 2월까지 기술검증(POC)을 진행한 결과 검수 오차율은 ㎡(제곱미터)당 ±5%에 불과했다. 이 대표는 “여러 등급이 혼입된 철스크랩을 검수했을 때도 국가 철스크랩 분류 기준(KS D 2101)의 등급별 분포도를 97% 이상 정확하게 판별하고 이물질이 섞인 차량도 쉽게 찾아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JH데이터시스템은 2018년 10월 이 플랫폼에 대한 특허를 출원해 2019년 5월 취득에 성공했다. 이후 일본과 중국 등이 후발 주자로 관련 시스템 개발·도입에 나선 상태다.

국내 철스크랩 유통 구조는 철스크랩 발생처인 공장과 폐차, 폐구조물 등에서 최종 수요자인 철강사에 이르기까지 고물상-중간상-납품상의 3단계를 거친다. 납품상은 전기로 업체에 철스크랩을 최종 공급하는 납품권을 쥐고 있다. 최근 철스크랩이 주목받으며 대리점 형태의 철스크랩 가공 업체가 대형화하고 있지만, 대금 결제가 주로 어음이나 현금으로 이뤄져 가격 책정과 자재 관리는 깜깜이인 게 현실이다.

JH데이터시스템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철스크랩 플랫폼 구조도.(자료=JH데이터시스템)
AI 플랫폼을 도입하면 유통량을 비롯해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책정, 품질 등의 데이터를 전산상으로 한눈에 관리하는 게 가능해진다. 철강사들은 철스크랩을 검수하던 인력 비용을 절감하고 원자재 관리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납품상 입장에서는 기존에 수요자 위주였던 시장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철강사가 ‘부르는 게 값’이었던 철스크랩 시장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요와 공급에 맞는 가격을 책정해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된다”며 “데이터만 입력하면 모든 게 자동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공급사와 제철소 간 가격에 대한 견해차로 불필요한 논쟁을 막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철강사와 납품상 모두 이 시스템을 서둘러 도입할 요인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제철소 한 곳당 해당 시스템 도입 비용은 약 20억원으로 추산된다. 소규모 납품상의 경우 1대당 1000만원에 달하는 라이다(LiDAR) 센서 비용이 부담될 수 있다.

이 대표는 “기존 철스크랩 시장은 이미 고착화해 있어 민간이 바꾸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도입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미 중국의 경우 철스크랩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수출 물량에 40% 관세를 부과하는 등 수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철스크랩이 국가 주요 자원으로 부상하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체계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철강사의 철스크랩 수입량은 413만t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2월 ‘저탄소 철강생산 전환을 위한 철강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고 철스크랩을 순환자원으로 인정하며 제조업에 준하는 기업활동 지원을 위한 법령정비 검토에 나선 상태다. 이 대표는 “정부가 지역을 정해 AI 철스크랩 플랫폼 도입을 시범사업으로 진행하고 전국에 확산하는 식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JH데이터시스템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철스크랩 플랫폼 적용 시제품. 카메라와 라이다, 거치대로 구성됐으며 차량이 지나갈 때 적재된 철스크랩 무게, 품질 등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사진=JH데이터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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