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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노조는 1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청 앞에서 조합원 52명이 모인 가운데 ‘송현동 부지 자유경쟁 입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송현동 부지 저평가 매입은 대한항공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노조는 객실승무원, 정비, 일반직 등 1만 2000여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사내 최대 규모 노조다.
대한항공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제선 운항이 80%가량 줄어드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 직원을 대상으로 70%가 넘는 수준의 휴업을 진행하며 생존 투쟁 중이다. 하지만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 노력 일환으로 송현동 부지 등 매각을 추진하던 와중에 암초를 만났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 보상비를 4671억원에 책정해 공고하는 등 공원화를 위한 작업에 나선 것이다. 이에 최소 5000억원에 송현동 부지를 매각해 자본을 확충하려던 대한항공은 난감해하고 있다.
임세준 대한항공 노조 본사지부장은 모두 발언을 통해 “송현동 부지매각은 단순히 수익을 얻기 위한 자산매각이 아니라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이라며 “서울시는 약 7000억원에 이르는 땅을 헐값에 수의계약으로 매입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서울시의 행보는 정부의 정책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최대영 대한항공 노조위원장은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로 감원 대신 일시 휴업 등을 이용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체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한다”며 “반면 서울시는 민간기업의 부지를 헐값에 매입해 유동성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항공은 국책은행으로부터 공적자금(1조 2000억원)을 수혈받기로 했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유휴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며 “서울시는 대한항공 2만여 노동자들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생존권을 사수하는 모습은 안중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사업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에 대한 족쇄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민간의 땅을 강제로 수용하겠다는 것은 엄연히 사적재산권의 침해”라며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에 대한 족쇄를 풀어 자유 시장 경제 논리에 맞게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가격을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 매각은 연내 매각이 불투명하다. 강성수 대한항공 노조 정책국장은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송현동 부지 매각 입찰에 대여섯 곳의 업체가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지만, 서울시의 공원화 조성 계획에 사업이 안 될 것으로 우려해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서울시가 공권력을 남용해서 민간기업의 사업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한항공의 부지 매각 주관사인 삼정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이 지난 10일 마감한 송현동 부지 매각 예비 입찰에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15개 회사가 투자설명서를 받아가긴 했지만, 아무도 매각 입찰의향서(LOI)를 제출하지 않은 것. 예비 입찰 단계인 만큼 LOI를 내지 않아도 본 입찰에 응할 수는 있지만, 사업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의 공원화 추진계획으로 본 입찰에도 선뜻 나서는 기업은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한항공 노조는 잠정적으로 다음 달 서울시와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계획이다. 강 정책국장은 “서울시에서 의사 타진을 해왔고 7월께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는 것으로 잠정적으로 계획을 잡았다”며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시에는 한국노총과의 연대를 통한 투쟁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