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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앞으로 경찰은 ‘대림동 여경 논란’의 피의자처럼 경찰관이나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범죄자에게 테이저건(전자충격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총이나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권총의 사용까지 허용된다.
‘암사역 흉기 난동’ 등 기존에는 경찰들이 소송 등을 우려해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 같은 가이드라인 제시로 보다 활동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경찰청,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 규칙’ 제정…11월 중 시행
경찰청은 지난 20일 열린 경찰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제정안은 경찰청 예규로 발령될 예정이며, 6개월의 경과 기간을 거쳐 11월 중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 전자충격기나 수갑 등 일부 장구에 대한 사용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경찰관이 현장에서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물리력을 판단해 사용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통일된 기준과 구체적인 지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지난해 6월부터 연구용역을 통해 초안을 만들고 학계·시민단체·국가인권위원회·현장경찰관 등이 참여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등 1년 동안 각계의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했다.
경찰은 새롭게 만든 물리력 행사 규칙에 3대 원칙을 적용했다. 이 원칙은 △평균적 경찰관의 객관적 관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객관적 합리성의 원칙’ △대상자가 제기하는 위해 수준에 상응해 물리력 수준을 정해야 한다는 ‘대상자 행위와 물리력 간 상응의 원칙’ △급박하지 않은 경우 대상자를 설득·안정시켜 보다 덜 위험한 물리력을 통해 상황을 종결해야 한다는 ‘위해감소노력 우선의 원칙’ 등이다.
◇폭력 피의자엔 테이저건, 흉기 위협땐 권총 사용도
경찰은 위험 정도에 따라 물리력 기준을 5단계로 나눴다. 이번 규칙에 따르면 현장 피의자가 경찰관의 지시 통제에 따르는 ‘순응’ 단계에서는 언어 등을 사용해 협조를 유도하거나 체포를 위한 수갑을 사용하는 등 물리력만을 사용하게 된다. 이어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경찰관의 지시나 통제에 응하지 않는 ‘소극적 저항’ 단계에서는 신체 일부를 잡아끌거나 경찰봉 양 끝 또는 방패를 신체에 안전하게 밀착한 상태에서 밀거나 잡아당길 수 있다.
체포를 거부하고 경찰관을 밀고 잡아끌거나 경찰에 침을 뱉는 등의 ‘적극적 저항’ 단계에서부터는 실질적인 물리력이 행사된다. 이 경우 경찰은 관절꺾기나 조르기·넘어뜨리기·누르기 혹은 분사기 등 통증을 느낄 수 있으나 신체적 부상을 당할 가능성은 낮은 물리력을 행사한다. 경찰이나 시민 등 제3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하거나 실제 공격하는 ‘폭력적 공격’의 단계에선 신체부위·경찰봉을 이용한 가격, 전자충격기 사용 등으로 피의자를 제압하게 된다. 최근 ‘대림동 사건’은 이 경우에 해당 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은 경찰봉 등으로 적극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총기나 흉기·둔기 등을 이용해 위력을 행사하고 있거나 목을 세게 조르는 등 경찰관 혹은 제3자에 대해 사망 또는 중상을 입힐 수 있는 행위를 하는 ‘치명적 공격’ 단계에서는 권총을 사용하거나 경찰봉이나 방패 등으로 급소 부위를 타격하는 등 대상자의 사망 혹은 중상을 초래할 수 있는 물리력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현장 경찰은 낮은 단계의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대상자의 위해 정도와 급박성 등을 고려해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물리력을 행사하게 된다. 또한 권총 사용에 대해선 엄격한 기준을 추가적으로 명시해 오용될 수 있는 여지를 막았다.
경찰은 이와 함께 경찰봉이나 전자충격기·권총 등 주요 물리력 수단의 구체적인 사용한계와 유의사항도 규정하고, 경찰관이 총기 등 고위험 물리력을 사용한 경우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조치도 마련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통일된 기준으로 경찰 물리력 행사의 균질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필요한 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돼 법집행력이 향상될 것”이라며 “향후 이 기준에 따라 부단한 교육훈련을 실시해 모든 경찰관이 기준을 제대로 숙지하고 체화하도록 하는 한편 휴대 장비 체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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