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과 주석을 지낸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1869~1940) 선생의 손녀 이애희(86) 씨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인 이씨는 서울 구로구 개봉3동의 작은 빌라에서 홀로 살고 있다. 최근엔 치매 증상도 보이고 있지만, 돌봐줄 이가 없다. 이씨는 “적적하게 혼자 사는 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흔한 일”이라며 “요즘은 뭘 생각해도 기억이 잘 안 나고 자주 깜빡깜빡 한다”고 한숨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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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이데일리 취재진의 방문에 이씨는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오니까 너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직계 가족이 없는데다 일가 친척과의 교류도 끊긴 이씨는 작은 방에서 혼자 TV를 보는 일이 하루의 전부라고 했다. 취재진에게 방석과 음료를 내주고 싶어했지만, 드나드는 이가 없는 탓에 집에 구비돼 있지 않았다. 이씨는 “대접할 게 믹스커피뿐이네”라며 연신 아쉬워했다.
이씨의 조부인 이동녕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며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정부는 임정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 주석 등을 역임한 이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씨는 “6살 때 젊은 사람들이 갑자기 집에 와서 ‘일본사람들 온다!’라고 하면 할아버지가 지붕에 올라가 숨고 난리도 아니었어”라며 “그때 날 보시면서 ‘쉿!’ 하면서 손짓했는데 매번 쫓겨 다니시는 모습을 보면 애잔하기도 했지”라고 조부에 관한 기억을 더듬었다.
이씨는 국가 지원금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기초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 서울시 독립유공생활지원수당 등 명목으로 매달 약 8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여기에 2018년부터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생활 안정 지원 목적으로 주는 47만원을 추가로 받지만 생활은 넉넉지 않다.
돌봄서비스도 부족하다. 보훈처와 동주민센터에서 지원하는 복지 서비스는 중복수혜가 어려워 이씨는 보훈처 제공 방문서비스만 받는 실정이다. 보훈처 복지서비스 ‘보훈섬김이’는 매주 이틀, 반나절이 안되는 동안 집안일을 도와주고 말동무해준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자 치매 전조 증상을 보이는 여든 넘은 이씨가 일주일로 치면 고작 한나절만 국가의 돌봄을 받는 셈이다.
이씨는 “지원금을 받지만 먹고 생활하는데 돈이 드니까 옷을 사입거나 하고 싶은 걸 하기엔 빠듯하다”며 “나만 그런 것도 아니지, 독립유공자 후손 중에 잘 사는 사람도 없다. 이젠 어디 가서 독립유공자 후손이라고 말하기도 눈치 보인다”고 했다. 그는 “보훈처에서 아침 9시 30분쯤 오면 한두 시간 정도 청소를 해주고 가는데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은 그 사람뿐”라고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의 문턱을 낮춰 후손 모두가 더 나은 서비스를 골고루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자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예컨대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후손 지원은 ‘유족증’을 내보여야 받을 수 있는데, 이씨의 경우 큰아버지 가족이 유족증을 보유하고 있어 받을 수 없다. 가족관계등록부 등으로 후손임이 확인되면 지자체 지원도 함께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구로구 관계자는 “복지관에서 노인맞춤 방문관리를 해드리려 했지만 보훈처의 복지서비스와 중복 제공이 안되더라”며 “거동이 더 불편해지고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 매일 찾아뵙는 돌봄서비스를 하거나 요양원 같은 시설로 모시는 예우를 해드려야 하지 않겠나. 정부 차원의 대책이 더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