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우리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간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은 10월 다시 고꾸라지며 반등에 실패했다. 국내 소비지표는 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다. 내수 회복도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기업의 생산과 투자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경제가 뒷걸음질 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1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우리 경제를 위협할 위험 요인으로 네 가지를 주시했다.
1. 빚 늘리는 가계
한은이 가장 먼저 주목한 부분은 가계부채다.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보면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2분기 기준 195.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민간신용비율은 2010년 4분기 이후 22분기 연속 확장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4년 이후 경기 회복세 미약해졌는데도 민간신용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우리나라의 민간신용비율의 위험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1분기 신용갭은 3.1%포인트로 주의(2~10%포인트) 단계에 있다. 신용갭은 부채가 장기 추세치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해 3분기 3.9%포인트보다 추세치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 민간신용 증가율을 봐도 우리나라는 1분기 기준 5.9%로 미국(3.7%) 호주(4.0%) 인도(5.6%) 일본(1.1%) 등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는 “민간신용 증가율이 종전 추세치에서 빠르게 벗어나 경계감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신용을 늘리는 주범은 가계다. 명목 GDP 대비 기업신용 비율은 금융위기 이후 105% 내외에서 움직이는 반면 명목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2008년 1분기 72.7%에서 2분기 90.0%로 확대됐다.
특히 2014년 하반기 들어 가계신용 증가세가 가팔라졌다. 기준금리가 인하된 데 이어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완화하는 등 규제 완화가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윤 부총재보는 “주택경기가 갑자기 꺼진다면 위험해질 수 있겠지만 감독당국의 대책, 은행의 위험 관리 등을 바탕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통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 본격화한 기업 구조조정
지난해 말 정부는 경기민감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방향을 설정하기로 했다. 9월 철강·유화업종에 이어 전날 조선·해운업종까지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한은은 기업 구조조정이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은행에서 기업 구조조정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조선·해운업체 부실로 여신건전성이 나빠지자 국내 은행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태도를 강화한 것. 채권시장에서는 국고채 금리가 내리는데도 비우량 회사채 금리는 올라 신용스프레드가 벌어졌다.
과잉 인력과 설비를 조정하고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과정 역시 실물지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등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은 신규 투자와 유지보수 투자 모두 줄일 수 있어서다. 실제 조선업이 집중된 경남과 울산 지역 실업률은 1%포인트 넘게 올랐고 소비심리도 전국 평균치를 한참 밑돌고 있다.
한은은 “경기민감업종 등의 구조조정이 미뤄지거나 이들 업종의 부실이 연관 업종으로 확산된다면 금융·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3.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
2014년 이후 떨어지기 시작한 국제유가는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산유국의 경제·금융 불안이 세계 금융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에너지 관련 기업도 투자를 줄이면서 세계 경제 둔화에 영향을 줬다.
국제유가는 다시 위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선진국과 신흥국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되면서 원유 수요가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산유량 감소 등으로 공급 과잉 문제가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은은 국제유가의 완만한 상승세가 성장에 부담이 되기보다 소비와 투자심리 회복, 수출 개선 등으로 경제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0%대 물가상승률 역시 저유가의 하락 압력이 잦아들며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4. 美 금리 언제쯤, 얼마나 올리나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의 통화정책이 꼽혔다. 미국이 정책금리를 인상한다면 전 세계에 풀려있던 자금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미국 국채 금리를 따라 움직이는 우리나라 국고채 금리 역시 오름세를 타며 가계부채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다만 한은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어느 정도 미리 반영돼있고 각국 금융상황도 전반적으로 괜찮다고 판단했다. “신흥시장국 취약성을 평가했을 때 상당수 신흥시장국이 지난해 말보다 대외부문과 국내 금융부문이 개선됐다(국제금융협회)”는 것.
한은은 “전 세계 경제·금융 여건이 일부 나아지긴 했지만 유로존 금융기관의 수익성 악화, 신흥시장국의 민간신용 급증 등 취약요인이 있어 미 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의 기대 변화, 글로벌 가격변수 움직임 등을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