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세형 기자]올해 굵직굵직한 합병 이슈가 연이어 터지면서 공매도 투자자들이 울상이다. 주가 하락에서 이익을 취하기 때문에 사악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지만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주식을 다시 사들여야 하는 처지라서 이벤트가 발생할 수록 이들이 받는 타격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지난 1일 주식시장에서 합병을 결의한 삼성중공업(010140)과 삼성엔지니어링(028050)은 각각 6.24%, 12.52% 급등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거나(삼성중공업) 부진의 늪에서 간신히 몸을 추스려 가고 있던(삼성엔지니어링)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오랫만에 가슴 시원한 주가 상승을 맛볼 수 있었다.
합병 자체가 주가 상승을 불러온 것이지만 여기에 공매도 투자자들의 환매수가 겹치며 상승폭을 더욱 키웠다. 공매도 투자자들이 주식을 주워 담기에 바빴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나라의 주식대차 관련 규정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인이 언제든 주식 반환을 요청할 수 있으며, 국민연금을 비롯해 연기금이 주로 대여자로 나서고 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연기금은 주식매수청구권 관련 이벤트가 발생하며 거의 어김없이 주식을 반환해 가고 있다. 결국 연기금 측에서 주식을 빌어 차입매도에 나섰던 공매도 투자자들이 허겁지겁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김영성 대우증권 연구원은 “특히 삼성엔지니어링은 업황 턴어라운드에 대한 기대가 낮아 공매도 물량이 많았고, 대체 차입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공매도 투자자들이 서둘러 숏커버링(환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깜짝 환매수는 올들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구조조정 이벤트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삼성그룹 만 올들어 두번째로 공매도 투자자들에게 이런 폭탄을 안겼다. 지난 3월31일 삼성SDI(006400)가 제일모직을 전격 합병한 것이 그 첫번째다. 합병을 결의한 당일 삼성SDI 주가는 6.62% 폭등했는데 사흘 뒤인 4월3일 400억원 안팎의 대차잔고가 줄었다. 최소한 이만큼의 주식을 서둘러 매입해 상환했다는 의미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카카오 합병은 올해 공매도 투자자에게는 가장 뼈아픈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선 인터넷 시장을 양분하던 다음에게 모바일 인터넷 시대는 악몽에 가까웠다. 카카오가 새롭게 부상하고 NHN도 라인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다음은 제대로된 대응을 하지 못해 2류 회사로 추락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5월23일 밤 10시 다음(035720)은 긴급 이사회를 소집, 카카오와의 합병을 전격 결의한다.
세상에 알려진 것은 다음주 월요일이던 5월26일, 이날 하루 매매정지를 당하고 27일과 28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폭등세를 탔다. 끝났다고 생각하던 회사에 카카오라는 선물은 그만큼 강력했다.
카카오와의 합병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공매도 투자자에게는 재앙을 낳았다.
카카오와의 합병 결의 무렵 다음 주가가 꿈틀대기 시작하자 별다른 재료가 없다고 판단했던 공매도 투자자들이 오히려 공매도 규모를 늘렸다. 500억원 초반이던 대차잔고는 합병 결의일 940억원까지 근 2배로 늘어났다. 시가총액의 10%에 육박했다.
하지만 합병이 공개된 이후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당시 투자자문사 2곳이 공매도 포지션을 대량으로 취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깜짝 놀라 이들이 주식을 사들이려 했으나 27일엔 거래가 거의 없던 탓에 넋놓고 바라만 봐야 했다.
다행히 5% 넘는 지분을 보유한 KB운용측에서 주가 상승폭이 과도하다고 판단, 주식을 내다 팔면서 공매도 투자자들은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매도 투자자가 항상 이기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반대의 경우도 상당하다”며 “기업구조조정 이슈가 빈번할 경우 이들이 받는 타격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