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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 아연이온전지는 물 기반 전해질을 사용하는 배터리다. 불이 붙을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고 가격이 저렴하며 환경 부담도 적어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차세대 후보로 꼽힌다.
하지만 아연 이온은 전하가 커 전극 안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양성자는 크기가 작아 빠르게 움직이지만, 과도하게 반응하면 부산물이 생겨 아연 이온의 이동을 방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연구에서는 양성자 반응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박선아 교수 연구팀은 이 같은 접근을 뒤집었다. 양성자 반응을 없애는 대신 아연 이온과 양성자가 저장되는 순서를 제어해 두 이온을 모두 에너지 저장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전극의 미세한 구멍에 양성자를 붙잡아둘 수 있는 ‘아민 작용기’를 넣었다. 특정 전압에서 양성자를 저장하도록 설계해 상대적으로 큰 아연 이온이 먼저 저장되고, 이후 작은 양성자가 추가로 저장되도록 했다.
큰 자갈을 먼저 병에 넣은 뒤 자갈 사이의 빈틈을 모래로 채우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큰 아연 이온을 먼저 저장하고 그 사이의 공간을 작은 양성자로 채워 전극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 실험에서도 전압이 높은 구간에서는 아연 이온이 먼저 저장되고, 전압이 낮아지면서 양성자가 추가로 저장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두 이온이 서로 다른 전압 영역에서 차례로 에너지 저장에 참여하면서 서로의 반응을 방해하는 현상도 줄였다.
성능도 확인됐다. 충·방전 속도를 16배 높인 조건에서도 초기 저장 용량의 46.9%를 유지했다. 일반적으로 배터리는 충·방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저장 용량이 감소하지만, 개발된 전극은 빠른 충·방전에서도 비교적 높은 저장 능력을 유지했다. 500회 이상의 빠른 충·방전을 반복한 뒤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보였다.
연구팀은 다양한 X선 분석을 통해 아연 이온이 먼저 저장된 뒤 양성자가 추가로 저장되는 과정을 확인했다. 양성자를 저장했다가 다시 내보내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박선아 교수는 “기존에는 배터리 성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방해꾼’으로 여겨졌던 양성자를 오히려 에너지를 더 저장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이 원리를 다양한 전극 소재에 적용하면 더 많은 에너지를 빠르게 저장하는 배터리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화학 분야 국제학술지 ‘켐(Chem)’에 지난 7월 7일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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