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구동현 인턴 기자] 2019년 9월 11일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횡단하던 김민식 군이 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 직후 각계에선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내 교통사고 처벌 기준에 대한 논의가 펼쳐졌다. 관련법을 손봐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자 정치권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해 10월 발의된 ‘도로교통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12월 24일 제정됐다. 아홉 살짜리 피해자의 이름을 딴, 이른바 ‘민식이법’이 세상에 나온 시점이다.
2020년 3월 25일 시행된 민식이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정 도로교통법 제12조는 스쿨존 내 단속카메라 등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 설치 의무를 골자로 한다. 특가법에 신설된 제5조의13은 스쿨존에서 어린이 상해 및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처벌 하는 내용을 명시했다.
■ 민식이법 시행 이후 스쿨존 교통사고가 줄었다?
숨이 멎은 자리에 법이 피었다. 민식이법은 오는 3월이면 시행 3년을 맞는다. 그간 아이들의 등하굣길은 예전보다 안전한 길로 변했을까. 이데일리는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등록된 어린이 교통사고와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민식이법 효과’를 짚어봤다. TAAS에는 교통안전법 등 관련법에 따라 경찰·보험사·공제조합 등에서 수집한 교통사고 누적 데이터가 있다.
전국 어린이(12세 이하)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난 2020년에 1만 건 아래로 떨어졌다. 2017년 10,960건에 달했던 교통사고가 2020년 8,400건으로 2,600건 가까이 감소한 결과다. 2010년대 들어 최다 어린이 사고를 기록한 2011년(13,323건)과 비교하면 35% 이상 낮아졌다. 그런데 법 시행 2년 차인 2021년에는 전년보다 489건 늘어난 8,889건의 사고가 집계됐다. 해당 데이터는 스쿨존과 민식이법을 적용하지 않는 일반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를 모두 포함한 수치지만, 사고가 증가세로 반전된 것은 부정적 신호다.
전체 사상자는 대체로 감소하는 양상이다. 부상자 수는 2019년 14,115명에서 2020년 10,500명으로 3,615명 줄었다. 사망자 수도 2019년 28명에서 2020년 24명, 2021년 23명으로 소폭 감소세다.
예전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2011~2013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연평균 81.7명이었다. 2017년에는 부상자가 13,433명, 사망자는 54명에 달했다. 데이터는 전국 모든 도로에서 어린이 사상자가 점차 줄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2021년 부상자 수는 10,978명으로 전년보다 478명 상승했다.
통계는 아이들이 스쿨존에서 안심하긴 이르다고 말한다. 민식이법이 적용되는 스쿨존에서 일어난 어린이 교통사고로 분석 범위를 좁혀보니,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2019년 532건으로 정점을 찍은 스쿨존 사고는 2020년 464건으로 68건 줄었다. 그런데 2021년 523건으로 다시 급증했다. 2017년(464건)과 2018년(418건)을 넘어 2019년에 육박하는 수치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전체 학교급 등교율은 2020년 평균 약 50%, 2021년 1학기에는 평균 7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실제 등교 일수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민식이법 제정 당시 기대한 사고 감소 효과는 미미했다.
작년 사고건수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경찰청이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작년 9월 기준 399건으로 집계됐다.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한 달에 약 44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아직 나오지 않은 작년 4분기 통계를 합산하면 2021년 수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민식이법이 사고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인지 여부를 속단할 수 없다. 관련 데이터도 충분치 않다. 그러나 입법 취지와 별개로 스쿨존 내 어린이 사고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21년 스쿨존 내 어린이 부상자는 563명으로 2015년 558명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망자는 2019년 6명에서 2021년 2명으로 줄었다. 주목할 부분은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 비율(사망 건수/전체 사고 건수)이다. 2019년 스쿨존 내 사망률은 1/89로 나타났다. 89건마다 한 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셈이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2020년은 1/155, 2021년에는 1/262로 해마다 사망률이 급감했다.
차량이 시속 30km 이하로 주행할 때 보행자의 부상 정도가 급격히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2018년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한 속도별 차량 대 인체 충돌실험에 따르면 시속 60km로 달리는 승용차와 충돌한 보행자의 중상 확률이 92.6%, 사망확률은 80% 이상으로 예측됐다. 보행자 중상 확률은 시속 50km에서 72.7%, 스쿨존 제한 속도인 시속 30km에선 15.4%까지 내려갔다. 차량이 감속할수록, 사람이 덜 죽는다.
■ 스쿨존에서 어린이 사망케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
민식이법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비판 여론은 아이들의 안전이 아닌 가해자의 처벌 수위에 주목한다.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하더라도, 무기징역이나 3년 이상의 징역은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처벌 수위는 어땠을까? 이번에는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망사고 판결문 6건을 입수했다. 민식이법이 적용된 사건의 형량을 비교하기 위해 법 시행일인 2020년 3월 25일 이후를 기준으로 삼았다. 비실명 처리되지 않은 사건과 현재 재판 중인 사건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제외했다. 이렇게 확보한 판결문 6건 중 4건은 1심, 2건은 항소심에 관한 것이다. 판결문 내용을 토대로 스쿨존 교통사망사고 유형을 톺아봤다.
A. 중앙선 침범하고, 불법유턴 했지만 ‘집행유예’
2020년 5월 21일 전주 덕진구의 한 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A씨는 불법유턴을 시도하다 맞은편 도로 가장자리에 서 있던 2세 어린이를 들이받고 노면에 넘어진 피해자를 재차 역과해 사망케 했다. 불법유턴과 중앙선 침범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2대 중과실에 해당한다.
A씨는 ‘전방 주시를 철저히 하고 차선을 지키며,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업무상의 주의의무를 어겼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듬해 7월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A씨가 유족들에게 사죄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 도로교통 관련 법을 위반하거나 벌금형을 초과해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민식이법에 따른 첫 판례였다.
B. 횡단보도 건너던 일가족 들이받았는데 ‘징역 2년 6개월’
2020년 11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엄마는 다섯 살배기 첫째 아이를 등원시키려 신호기가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중앙선에 멈췄다. 반대편 차선의 차들이 서지 않고 계속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윽고 정지신호를 받은 차량은 횡단보도 부근까지 길게 꼬리를 물었다. 엄마가 한쪽 손에 붙든 유모차엔 3살 둘째와 1살 막내가 타 있었다.
카고 트럭 운전자 B씨는 교통 흐름을 살피지 않고 앞선 차량을 따라가다 사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엄마와 세 아이를 받았다. 막내는 경상에 불과했지만, 엄마와 첫째는 각각 전치 13주, 전치 6주에 해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둘째는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1심 결과 B씨에겐 징역 5년이 선고됐다. 법원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B씨의 전방 부주의와 횡단보도 침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아이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 상해로 인한 고통까지 더해졌으니, 피해자가 얼마나 참담할지 상상하기 어렵다”며 “아이의 유족들이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달라고 하는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B씨는 형이 무겁다는 이유를 들며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B씨에겐 1심과 마찬가지로 특가법(어린이보호구역치사), 특가법(어린이보호구역치상),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까지 3개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B씨의 죗값은 법정 최저형인 징역 3년에도 닿지 못했다. 2심에서 재판부는 1명 사망, 2명 중상, 1명 경상 등 총 4명에게 손해를 입힌 B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C. 전방 및 좌우 주시 의무 소홀히 해도 ‘집행유예’
2021년 3월 18일, 인천 중구의 한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9세 아이가 화물차에 치여 사망했다. 25톤 화물차는 아이를 들이받고도 이를 알아채지 못해 약 40m가량을 끌고 갔다. 사고가 발생한 편도 3차선 도로에는 인천항으로 가는 화물차가 줄지어 있었다. 시야 확보가 매우 어려워 필히 서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화물차주 C씨는 전방 및 좌우를 살펴 어린이 안전에 유의해야 하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지키지 못했다. 법원은 C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앞서 동종 범죄로 네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족과 합의했고,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어 민사상 손해를 상당 부분 전보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D. 보행자 보호 의무 게을리했는데 ‘집행유예’
2021년 7월 27일 승합차를 몰던 D씨는 서울 영등포구 스쿨존 내 인도에서 차도로 들어서던 6세 아이를 친 뒤 앞바퀴로 역과했다.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날 사망했다.
이로 인해 D씨는 법정에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D씨가 스쿨존에서 어린이 안전에 유의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D씨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과 피해자 측과 합의한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 무기징역, 징역 3년?…실형은 ‘1건’에 불과했다
민식이법 시행 이후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망사고 4건을 분석한 결과 입법 초기부터 우려됐던 과잉처벌은 없었다. 피의자가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단 1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이 떨어졌다. 아이 한 명이 사망하는 등 일가족 네 명이 크게 다친 사건이었다. 나머지 3건은 모두 집행유예였다. 3건 또한 평균 징역 2.7년, 집행유예 4년 선고에 그쳤다. 스쿨존 어린이 사망사고에 적용되는 민식이법의 법정 최저형은 징역 3년이다. 일반 여론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던 ‘징역 3년 이상, 최고 무기징역’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눈에 띈 사실은 아이들의 안전을 단순 속도 제한으로는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건A 발생 당시 가해 차량은 시속 9.1km로 달렸다. 재판부는 사건B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시속 30킬로미터의 제한속도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 인천지부가 감정한 결과 사건C 가해 차량은 시속 29.62km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사건D 판결문에는 정확한 차량 속도가 기재되지 않았지만, 제한속도를 위반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법령을 매만지기에 앞서 근본적인 현장 대책 및 관련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