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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웹사이트를 통해 성명을 내고 “일본과 평화조약 체결에 관한 협상을 지속할 의사가 없다”면서 “일본이 명백하게 비우호적 입장을 취해 우리나라 이익에 손해를 입히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발맞춰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를 가한데 따른 결과라는 설명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또 “러시아 남쿠릴열도와 일본 간 무비자 방문에 관한 1991년 협정, 그리고 남쿠릴열도 거주 일본인들의 고향 방문 절차 간소화에 관한 1999년 협정에 근거한 일본인들의 무비자 여행도 중단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이어 “일본과 공동 진행해오던 남쿠릴열도 내 공동 경제활동에 관한 대화에서도 탈퇴하겠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외에도 흑해경제협력기구 파트너 국가로 일본의 자격을 연장하는 결정과 관련해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명에 명시했다.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일방적인 협상 중단 발표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오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러 제재와 관련해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기 때문”이라면서, 러시아의 평화조약 협상 중단 결정은 “매우 부당하며 결코 수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주일 러시아 대사에게 일본 정부 입장을 전달하며 항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는 사전에 일본 측에 협상 중단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토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대러 외교 기본 방침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향후 대응에 대해선 “말할 시점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적국으로 싸웠던 일본과 옛 소련은 전쟁 이후 남쿠릴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을 지속해 왔다. 양국은 1956년 공동선언을 통해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진행하는 등 관계 재건에 착수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지난 2018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평화조약 협상을 가속시키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일본은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홋카이도 북쪽의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 등 남쿠릴열도 4개 섬을 돌려받길 원하고 있다. 일본은 1855년 제정 러시아와 체결한 통상 및 국경에 관한 양자조약을 근거로 이들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남쿠릴열도가 2차 대전 종전 후 전승국과 패전국간 배상 문제를 규정한 국제법적 합의(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에 따라 합법적으로 러시아에 귀속된 만큼, 반환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닛케이는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거부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양국이 임하기로 한 관계 개선의 길을 닫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