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사후 규제 동시 강화…사실상 재취업 막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같은 골자의 공정위 조직 쇄신방안을 발표했다. 검찰 수사 결과 공정위 퇴직자 관리 문제 등이 심각하게 드러나자 공정위가 신뢰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공정위 창설 이래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조직 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한다”면서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위원장이 책임의 선두에 서서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안은 사전적 규제와 사후 규제를 동시에 강화하는 안이 담겼다. 공정위는 우선 퇴직자와 현직자간 사건 관련 사적 접촉을 전면 금지시켰다. 김 위원장 취임이후 공정위는 ‘신뢰제고 방안’을 마련해 현직이 전직을 만날 경우 신고를 하는 방안을 시행했다. 사전 접촉은 허용하되 신고를 하면서 사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에 따라 근본적으로 ‘사적 접촉’을 차단하는 게 한계가 있던 만큼 보다 규제를 강화했다. 퇴직자와 현직자간 현장조사 및 의견청취절차 등 공식적인 대면접촉 외에 사무실 전화, 공직 메일 등 공식적 비대면 접촉도 보고 의무대상으로 확대한다.
이번 방안에 따라 현직은 전직과 사실상 접촉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건 관련한 사적 접촉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취지이나 ‘사건 관련’이라는 단서의 경계가 불분명한 터라 사실상 접촉을 하지 않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아울러 퇴직자 재취업 과정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것은 공정위 운영지원과에서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퇴직 직전 공무원를 관리하면서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운영지원과는 퇴직자의 연봉, 법인카드 수준 등까지 조직적으로 관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기업에 재취업을 청탁하는 부당행위를 신고할 수 있도록 ‘익명신고센터’도 운영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아울러 경력관리 의혹 차단도 나서기로 했다. 이번 수사 결과 공직자가 퇴직 직전 공무원의 경우 비사건 부서로 발령하면서 재취업심사를 회피했다는 문제도 불거졌다. 이에 공정위는 4급 이상 직원의 경우 △비사건부서 3회 이상 연속 발령 금지 △외부기간 또는 교육기관 파견 및 비사건 부서 근무를 합해 5년 이상 연속 복무 금지 등 인사원칙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외 현직자가 퇴직자, 기업, 로펌 등 공정거래 업무관계자와 함께 외부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전면 금지된다.
공정위는 사후 규제로는 퇴직자 재취업 이력도 공시하기로 했다. 퇴직자가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기관 및 대기업(계열사 포함)에 재취업할 경우 퇴직일로부터 10년간 이력을 공정위 홈페이지에 상세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정보공개를 통해 시장감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이번 조치는 사실상 공정위 퇴직자의 재취업이 상당수 막힐 것으로 예상된다.
|
공정위는 아울러 공정위가 독점하고 있던 전속고발권 등 상당수 권한도 내려놓기로 했다. 공정위 퇴직자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배경에는 공정위가 그간 법 집행 권한을 독점해왔고, 권한을 이행하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기소가 가능한 전속고발권은 상당수 폐지하기로 법무부와 합의를 한 상황이다. 이미 공정위는 유통3법(가맹법, 유통법, 대리점법), 표시광고법, 하도급법 상 기술탈취와 관련한 전속고발권은 폐지하기로 공표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입찰담합, 가격고정, 시장분할 등 경성담합 4가지에 대해서도 전속고발권을 폐지해 공정위 고발이 없어도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는 21일 법무부와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관련 합의문에 대한 서명식을 열 예정이다.
아울러 가맹법 처리와 관련해 법 집행 권한을 지자체에 분산시키고, 분쟁조정 사소제도 활성화 등 민간소송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제도도 마련키로 했다.
◇공정위 법집행 역량 약화되나…갈라파고스 우려도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에 따라 공정위 법 집행 역량도 상당수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현직과 전직간 불미스러운 일이 지속해서 불거지고 있는 터라 불가피한 조치를 내놓긴 했지만, 자칫 ‘갈라파고스’가 된 상황에서 시장과 괴리된 법집행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공정위는 유착의혹을 살수있는 외부교육 참여도 전면 금지했다. 현직이 공정위 퇴직자 및 기업·로펌의 공정거래 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모든 외부교육 참여도 사전적으로 금지시켰다. 공정경쟁연합회의 ‘공정거래법 전문연구과정’, 서울대의 ‘공정거래법 연구과정’ 등 참여를 즉각 금지하고 향후 유사 교육과정 참여도 전면 금지할 방침이다. 교육과정에서 전직과 로펌관계자를 만나면서 유착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로펌이나 시장관계자들은 이 과정에서 공정위가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현실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자칫 공정위가 법집행 관련해 ‘탁상공론’만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채규하 사무처장은 “공적으로 열리는 세미나 같은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장 이해도를 높이고 공정위 의견도 개진할 것”이라며 “공정위 자체 연구회를 활성화하고 시장과 소통할 수 있는 간담회를 활발하게 만드는 등 시장과 괴리되지 않는 방안도 적극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