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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에 우리나라도 올해 기준금리를 6번 올리면서 금리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급전이 필요한 대부업체조차 금리를 일정 한도 이상 올리지 못하고 있다. 연 20%로 고정돼 있는 법정 최고 금리 때문이다.
이는 1, 2 금융권이나 대부업체들의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막아 차주들을 보호하겠다는 선한 취지에서 시행한 것이지만, 오히려 이 규정 때문에 저신용자들은 갈 곳을 잃고 제도권 밖인 불법 사금융의 늪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제2금융권 회사들이 금리 인상에 따라 조달 비용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20% 수준의 이자로는 저신용자들의 부실 위험을 떠안으면서까지 대출을 내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착한 정책의 역설’인 셈이다.
2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리가 빠르게 오르고 있지만 법정 최고 이자율은 연 20%에 머물다 보니 아무래도 저신용자들에 대한 대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역마진을 봐 가면서까지 그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법정 최고 금리는 사인 간 거래에 적용하는 이자제한법과 금융기관 및 대부업자 등에 적용하는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에서 각각 정하고 있다. 이자제한법은 최고 금리를 25%, 대부업법은 27.9%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결정하도록 하는데, 정부는 지난해 7월 고금리 대출자의 부담을 낮춰 주겠다며 시행령을 개정해 최고 금리를 연 24%에서 20%로 내렸다.
문제는 한 번 내린 최고 금리를 다시 올리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로 표를 먹고 사는데, 대출 금리를 내리자는 것도 아니고 올리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몰린다면 그들을 위해 서민 정책 금융 상품을 확대하자는 것이면 모를까, 어렵다”고 못박았다. 이어 “물론 최고 금리를 시행령을 통해 정부에서 정한다고는 하지만, 이 같은 중대한 사안은 반드시 당정 협의회를 거치도록 돼 있다”며 “정부가 이를 들고 오지도 못하겠지만 만약 들고 온다고 하더라도 여당에서 이를 받아줄 리 만무하다”고 덧붙였다.
◇법정금리 인하 법안만 쏟아져
실제 국회에서도 여야 막론하고 최고 금리를 현재보다 더 인하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인천 동구·미추홀구을)은 지난달 금전 대차에 의한 계약상의 최고 이자율을 기존 연 최대 25%에서 12%로 낮추는 내용의 ‘이자제한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7월 법정 최고 이자율을 어긴 대출은 계약을 무효로 하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개정안을 내며 “법정 최고 금리 적정 수준은 11.3~15%”라는 경기연구원 연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는 이 같은 취지의 법안이 10건 넘게 계류돼 있다.
대안으로 이 같은 금리 인상기 저신용자들의 금융 소외 문제 해결을 위해 이른바 ‘연동형 법정 최고 금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시장 금리 연동형 법정 최고 금리 제도를 도입하면 조달 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 차주 배제 현상을 대폭 완화할 수 있다”며 “조달 금리의 상승 폭만큼 법정 최고 금리가 인상되면, 고정형 법정 최고 금리하에서 조달 금리 상승으로 대출 시장에서 배제되는 취약 차주의 대부분에게 대출 공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KDI에 따르면 법정 최고 금리 2%포인트 인하 시 지난해 말 기준 카드·캐피털·저축은행 신용 대출을 받은 차주 약 65만9000명이 비제도권 금융으로 밀려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