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피치를 찾았다"…애플 주식에 꽂힌 버핏 `돈방석`

이정훈 기자I 2017.02.15 11:17:26

애플 주식 4배로…IBM 이후 첫 기술주 매집
콤스-웨슬러 후계자 투톱의 의사결정 따라
`딱 치기좋은` 팻피치 발견…ROE-PER-배당 등 적합

돈방석에 앉은 버핏을 묘사한 그림 (자료=인사이더 몽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야구 경기에서 잘 던지던 투수가 치기 쉬운 한가운데로 높은 공을 던지는 실투로 타자에게 홈런을 얻어맞는 상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흔히 `팻 피치(fat pitch)`라는 용어를 쓴다. 실제 팻 피치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으로 유명했던 테드 윌리엄스는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타격의 전설로 남아있다.

바로 이 윌리엄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998년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투자에서도 어느 종목이 저평가돼 투자하기 좋은 이런 팻 피치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레이더망에 걸린 종목이 바로 천하의 애플이었다.

◇`IBM 이후 처음이야`…더 커지는 버핏의 애플 사랑

14일(현지시간) 버크셔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지분변동보고서에 따르면 버크셔는 지난해 12월말 현재 애플 주식을 5740만주 가지고 있다. 앞선 9월말 보고서에서 1520만주를 가지고 있다고 신고했으니 작년 10월부터 12월 사이 석 달간 보유 지분을 무려 4배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이를 12월말 주가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66억4000만달러(약 7조5600억원)에 이른다. 만약 올 1~2월에 주식을 안 팔았다고 가정하고 애플의 현 주가로 계산해 보면 77억달러(약 8조8100억원)나 된다. 올들어 한 달반만에 1조원 이상을 번 것이다. 애플 주가는 최근 12개월간 무려 42%나 뛰었고 이날도 장중 사상 최고인 135달러까지 치솟았다. 예상보다 좋은 실적과 10주년을 기념하는 차세대 아이폰 출시에 대한 기대감, 도널드 트럼프의 깜짝 감세조치 기대 등이 한꺼번에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버핏의 애플 주식 매집을 두고 말이 많다. IBM 정도를 제외하고는 기술주는 거들떠 보지 않던 버핏이었기 때문이다. 버핏 CEO는 틈만 나면 자신이 잘 모르는 정보기술(IT) 분야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실제 그의 장바구니를 들여다 보면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으며 소비가 이뤄지는 소비재업종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질레트 면도기나 코카콜라, 크래프트 하인츠, 비누회사, 철도회사 등이다.

◇후계자 투톱의 결정…버핏의 투자원칙에는 딱 들어맞아

그렇다면 버핏은 자신의 투자원칙을 깬 것일까? 일단 버핏 CEO는 지난해 1분기 애플 주식을 처음 산 뒤 “이 투자 결정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후계자로 점찍은 토드 콤스와 테드 웨슬러 두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이 의사결정권자였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스티브 배스 메릴랜드대 교수는 “테드와 토드는 각각 90억달러 정도씩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이들 중 한 명 이상이 애플에 투자한 것으로 안다”며 “버핏은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누구보다 탁월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고 그 범위가 차츰 넓어지고 있지만 기술주에 관한 한 그보다 더 잘 아는 전문가가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매니저들이 애플이라는 종목을 점찍은 건 버핏이 말하는 팻 패치에 딱 맞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버크셔가 지난해 1분기 애플 주식에 처음 발을 담궜을 때 980만주를 매입했고 2분기에 추가로 540만주를 샀다. 그러다 5월 중순에 애플 주가가 90.25달러까지 급락했고 버크셔의 변심은 실패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경쟁자인 조지 소로스나 헤지펀드 그린라이트캐피털을 이끄는 데이빗 아인혼 등이 애플 주식을 급하게 처분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버크셔는 3분기에 애플 주식을 단 한 주도 사지 않고 관망했다. 그러다 다시 4분기에 급격하게 지분을 늘린 것이다. 이 사이에 팻 피치의 기회를 발견한 셈이다.

아울러 애플은 버핏이 원래부터 관심을 가지던 투자대상 기준에도 딱 들어 맞는다. 애플의 10년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는 31.5%에 이른다. 이는 버핏이 요구하는 ROE 최소 수준인 15%에 2배를 넘는 수준이다. 또 최근 3년간만 놓고 보면 애플의 ROE는 더 높아져 37.2%에 이른다. 주당 현금흐름도 7.30달러 이상이다. 그가 선호하는 낮은 주가수익비율(PER)에도 부합한다. 애플의 PER은 16.04배이고 올해 추정 PER은 14.93배로 더 낮다. 현금배당도 주당 2.4%에 이르고 자사주 매입도 1750억달러 규모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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