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물가 309개 품목 중 10% 이상 오른 품목의 수는 4월에 감소세를 보였으나 5월 다시 확대됐다. 외식 등 서비스 물가가 둔화됐으나 의류 등을 중심으로 상품 가격 상승폭이 커졌다. 근원물가의 더딘 하락세에 정부의 라면 등 가격 인하 압박이 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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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원물가 10% 이상 오른 품목 36개서 45개로 늘어
전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작년 7월 6.3%로 정점을 기록했다 올 5월 3.3%로 10개월 만에 3%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근원물가는 작년 11월 정점을 찍은 후 5월 3.9%로 6개월간 고작 0.4%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한은은 19일 물가안정목표 운영 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물가 둔화기였던 2008년, 2011년 근원물가가 정점을 찍고 6개월간 각각 1.9%포인트, 1.6%포인트 하락한 것에 비해 매우 더디게 둔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근원물가를 집세, 상품, 집세를 제외한 서비스로 분류해보면 집세는 작년 2월 2.1%로 올라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5월엔 0.6% 상승에 그쳤다. 집세를 계절조정지수 3개월 변화율(연율)로 보면 4월부턴 -0.3%로 전환됐고 5월에도 -0.4%를 기록했다.
반면 근원상품은 작년 11월 4.6%로 정점을 찍은 후 4%초중반대에서 움직이다 4월 4.1%로 내려앉는 듯 했으나 5월 다시 4.3%로 상승했다. 집세를 제외한 근원서비스는 작년 10월 4.8%를 기록한 후 4월까지도 4.4~4.7%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끈적한 모습을 보이다 5월엔 4.3%로 둔화됐다.
한은은 근원상품보다는 근원서비스물가가 좀 더 더디게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5월에 흐름이 바뀐 것은 의류 등 섬유제품의 영향 때문이다. 5월 섬유제품 가격은 대면 활동 증대, 원료비 상승으로 전월비 3.4% 올랐는데 이는 1989년 5월(4.0%)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전년동월비로도 8.3% 올라 1~4월 평균 상승률(6.3%)을 크게 상회했다. 반면 서비스 물가를 자극해왔던 외식물가는 4월 7.6%에서 5월 6.9%로 상승폭이 줄었다. 외식을 제외한 서비스 물가 또한 5.0%에서 4.7%로 낮아졌다.
근원상품이 다시 상승폭을 키우면서 전체 물가 품목 중 10% 이상 오른 품목의 개수가 5월에 확대됐다. 309개 근원물가 중 전년동월비 상승률이 10% 이상 오른 품목의 개수는 작년 12월 53개(비중 17.2%)에서 올 4월 36개(11.7%)까지 줄었으나 5월 다시 44개(14.2%)로 늘어났다. 전체 458개 소비자물가지수 품목 중 10% 이상 오른 품목도 4월 86개(18.8%)에서 5월 96개(21.0%)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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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물가 붙잡는 것도 한계…밀값 떨어졌으니 ‘라면값’이라도 내려라
근원물가가 더디게 하락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이 강해질 전망이다.
한은은 근원물가가 3.9%로 낮아졌지만 관리물가를 제외하면 4% 중반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쓰레기봉투료, 도로통행료, 시내버스료, 휴대전화료, 부동산중개수수료 등은 0%대 상승률을 보이는 등 공공서비스는 5월 1.0%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러나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공공서비스 물가 압력을 낮추는 데도 한계가 커지고 있다. 한은은 하반기 대중교통 요금 인상과 7월 환원되는 승용차 개별소비세율 인상(3.5%→5%) 등이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부의 시선은 라면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제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기업들이 밀 가격을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라면값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연초 소주 가격에 이어 공개적인 가격 인하 압력이다. 국제 밀값은 올 들어 13% 가량 하락했으나 라면(가공식품)값은 5월 13.1%나 올랐다.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3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19일 물가 간담회에서 추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올라가는 국면에서 기업들의 마진이 올라갔다”며 “원자재값이 많이 떨어졌으니까 기업들도 거기에 맞춰 고통을 분담해달라는 차원의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까진 집세가 근원물가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이런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주택매매지수는 올 2월까지만 해도 1%대 하락했으나 5월엔 0.22% 하락하는 데 그쳤다. 전월세 통합지수도 2월까지 1%대 떨어졌다가 5월 0.26% 하락했다. 일부 지역은 주택 거래가 증가하면서 상승세로 전환되기도 했다.
그나마 우리나라 집세의 물가 가중치는 9.8%로 미국 33.0% 대비 3분의 1 수준이라 집값이 다시 상승하더라도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총재는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하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서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갑자기 바뀌어 금방 가계부채가 늘어난다든지 부동산 가격이 금방 올라가는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