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KT아현국사 '화재 대책' 딜레마

김유성 기자I 2018.12.21 14:09:12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아직 뚜렷한 원인이 나온 것도 아닌데, 대책부터 나오는 게 너무 성급한 건 아닌가.’

20일 한국전파진흥협회 대강당에서 ‘통신재난 대응체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달 24일 KT아현국사 화재로 서울시내 일부에서 일어났던 통신대란 재발을 막기 위한 토론이었다.

토론회에는 발제자 2명과 좌장 1명을 제외하고도 12명이 참석했다. 통신업계, 재난전문가, 학계 등에서 왔다. 이들은 협회 대강당 앞 무대를 꽉 채워 앉았다. 책상 하나에 3명씩 ‘꾹꾹’ 앉았다.

20일 한국전파진흥협회에서 열린 ‘통신재난 대응체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사진 왼쪽부터 정재훈 과기정통부 통신자원정책과장, 박천일 행안부 사회재난대응정책과 사무관, 이종인 소방청 사방산업과장, 정준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 김동헌 재난안전원 원장, 이성준 ETRI 통신정책연구 그룹장, 신민수 한양대 교수, 김영철 ICT폴리텍 대학 교수, 최재명 목원대 교수, 김찬오 서울 과기대 교수, 강휘진 서강대 교수, 윤형식 SK텔레콤 운영그룹 상무, 오범석 KT 네트워크운용본부 상무, 정하준 LG유플러스 네트워크품질담당 상무
30분 정도의 발제 시간을 제외하고 85분 정도가 토론회에 할당됐다. 어림잡아 5분에서 7분정도 발언시간이 주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초반 발언자들이 긴 시간 얘기를 한다. 행사 시간 막바지에 이를 수록 발언자들은 말할 시간이 적어진다.

그런데 이날 토론은 행사 종료 20분을 남겨놓고 끝났다. 12명이 60분 정도 시간을 쓴 것이다. 좌장의 정리 시간을 포함하면 한 사람당 4분에서 5분 정도 쓴셈이다. 1~2분만에 자신의 의견을 말한 이도 있었다. 시간이 남다보니 플로어 질문 시간도 넉넉했다.

왜 시간이 남았을까.

우선 치열한 이해 관계자 간 대립이 없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KT아현국사 화재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의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다 정교한 통신재난 대책 마련에 힘을써야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은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다. 각자 한마디씩 의견을 말하는 정도였고 그나마도 전부터 계속 나왔던 것이다. 새로울 게 없었다.

두번째는 KT아현국사 화재후 발족했던 통신개선TF가 내놓을만한 결과치가 없다는 점이었다. 정재훈 과기정통부 통신자원정책과장은 ‘실태 조사가 이제 막 끝났다’면서 ‘분석 작업에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는 원인 규명이 되지 않은 게 아닐까 싶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쟁점’이 형성된다. 쟁점없는 토론회가 되다보니 패널들도 그다지 할 말이 없었다. 정부에 대한 질타도 막연했다.

원인 규명도, 구체적인 대책 마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토론회가 열린 이유는 뭘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정부의 압박감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토론회가 끝나고 과기부 고위 관료는 이번 토론회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원인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대책 마련부터 했어야 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KT아현국사 화재에 따른 통신 재난에 국민 분노가 커지고 언론의 조급한 질타가 이어지자, 대책을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중요하지, ‘뭔가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는 게 더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업계에선 사고 원인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서둘러 대책을 내놓으면 과잉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대책 마련에 부심했던 정부로선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여론 무마를 위해 ‘약속한 게’ 있는데 이제 와서 ‘신중론’이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책을 내놓으면 ‘졸속이다’라고,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뭘했냐’라고 질타를 받는 정부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칭찬받기 어렵다면 ‘사회적인 비용은 줄이고 국민 편익을 높이는 균형점을 찾겠다’는 정부 의지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정부의 태도가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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