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사건은 지난해 1월 중재위 출범 후 맡은 첫 사건이었다. 5개월 이후 중재위는 현대중공업에게 “도용해 생산한 제품 4000개 만큼을 테크마레로부터 구입하라”는 조정안을 내놓았다.
이에 테크마레 측은 “사건으로 인해 공장이 완전히 멈추고 소송비용도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터무니없는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중재위의 조정안을 거부했다. 결국 해당 사건은 더불어민주당이 운영하는 을지로위원회를 통해 중재위 조정안보다 더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극적 합의됐다. 이 업체는 추가한 제재조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함구했다.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소협력재단과 중소기업청에서 야심 차게 출범시킨 중재위가 지난 22일 출범 1년을 맞이했다. 출범 1년이 지난 이 단체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중재위가 1년 동안 진행한 사건은 총 22건(1월31일 기준)으로 원만하게 합의된 사건은 4건에 불과하다.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근거다.
중재위는 중소기업이 개발·보유한 기술을 보호하고 유출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기관으로 대중소협력재단이 전담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변호사·판사·기술전문가로 구성된 37명의 전문가가 ‘중재’과 ‘조정’ 등 두 가지 방법으로 사건을 처리한다. 중재위는 출범 당시 길게는 수년까지 걸리던 소송을 5개월 이내에 해결해 중소기업이 느낄 심리적·금전적 부담을 줄이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출발했다.
문제는 조정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합의 대상이 조정안을 거절하면 그만이라는 점이다. 왜 중소기업들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중재 대신 조정 신청을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중재는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동의를 얻어 중재 신청을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동네 깡패한테 찾아가 ‘지금 고소를 할 테니 동의를 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뭐냐”며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고는 중소기업 살리기라고 생색내기에 바쁜 게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재위가 약속한 5개월이라는 처리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재위를 찾았다가 조정안을 스스로 거절했다는 중소기업 대표 A씨는 “신청하고 2개월 동안은 자기들 팀 꾸리고 정비하는 데 쓰고 한 달 정도 있다가 1차 조정안을 바로 내놓았다”며 “조정안은 일방적으로 대기업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조정 신청을 하면 사실상 문 닫을 각오한 것인데 시간만 단축하려 하지 말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대중소협력재단 관계자는 “조정이 원만히 진행되지 않아 중소기업이 추가적인 소송에 들어갈 경우 비용을 지원할 방침”이라며 “또한 중재 신청을 돕기 위해 대기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과의 기술 분쟁 발생 시 중재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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