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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올 들어 3분기까지 21조8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역대 최대이던 지난해 연간 적자 5조9000억원의 4배에 이르는 유례없는 적자 규모다. 이대로면 올해 30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올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원유·가스·석탄 등 발전 원료비가 2~3배 뛰었는데 물가 안정 때문에 전기료는 올해 누적 약 15%밖에 올리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전력 수급을 도맡은 한전은 이대로면 1~2년도 버티기 어렵다. 올 초 46조원이던 한전의 자본·적립금은 내년 초면 16조원 전후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내년에도 발전 원료비 가격이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내후년께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연말 한전법 개정안 통과로 한전채 발행 한도를 자본·적립금의 최대 6배까지 늘려놓기는 했으나 자본·적립금이 올해처럼 급격히 줄면 한전채 발행 한도가 막혀 전력이나 발전 연료 구매대금을 치르지 못하는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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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가스(액화천연가스·LNG) 국내 수요의 약 80%를 도입 중인 가스공사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스공사는 가스요금에 원가를 반영하고 있어 수치상으론 적자가 아니지만, 정부의 공공요금 안정화 조치로 받지 못한 미수금이 급증해 역시 자금난에 빠져 있다.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작년 말 2조원에서 3분기 기준 6조원으로 세 배가량 늘어난 상황이다. 올 연말이면 8조8000억원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이 두 우량 에너지 공기업의 자금난은 국내 자금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두 기업은 자금난 속 운영비를 채권, 즉 공사채 발행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가스공사채 발행량이 급증하다보니 채권 시장에서의 자금이 이쪽에 몰리며 다른 기업까지 채권 발행이 유찰되는 등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한전채 발행량은 연내 70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유도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도 제공하기로 했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에너지 절감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에너지 효율 혁신에 나선 기업에 대한 혜택도 주기로 했다.
또 전기·가스료 현실화가 에너지 취약계층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만큼 이들 기업에 대한 전기요금 복지할인은 확대하기로 했다.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약 350만호를 대상으로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 바우처(현금처럼 에너지 요금을 결제할 수 있는 쿠폰) 단가도 올리기로 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한전·가스공사의 누적 적자와 미수금을 2026년까지 완전 해소할 수 있도록 요금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것”이라며 “이와 함께 기업이 에너지 효율화에 나설 수 있도록 관련 지원 대상과 지원율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취약계층 부담이 늘지 않도록 한전 전기료 복지 할인을 확대하고 에너지 바우처 지원 단가도 상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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