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을 장악한 준중형 세단은 현대 아반떼와 기아 K3다.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아반떼와 K3는 각각 7만5831대, 4만4514대로 준중형 세단 시장을 양분한다. 또 다른 국산 모델로 지난해 단종된 쉐보레 크루즈는 3615대를 기록했다. 수입 준중형 세단 중에서 국내 판매 모델은 혼다 시빅이 유일하다. 지난해 판매량은 겨우 345대다. 글로벌 판매 4위에 걸맞지 않은 성적이다. 이런 부진을 설명할 가장 큰 이유는 준중형에 걸맞지 않은 3000만원 전후의 엄청 비싼 가격이다. 수입을 하면서 각종 부대비용이 산더미처럼 불어나 미국에서 2000만원 전후 차량이 국내에서는 3000만원 대로 치솟는 것이다. 성능은 아반떼를 능가하는부분이 꽤 있지만 가격이 20~30% 비싸다 보니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
같은 아시아권 국가지만 중국 사정은 국내와 다르다. 지난해 중국에서 코롤라는 37만6719대 판매됐다. 2017년 대비 9.8% 증가한 수치로 중국 자동차 전체 판매량 5위이자 세단 부문 3위의 기록이다. 시빅의 판매량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대비 22.4% 증가한 21만5941대로 세단부문 11위를 차지했다. 현대차 링동(국내명 아반떼)과 기아 K3는 각각 18만8223대, 8만5694대로 각각 세단부문 14위, 45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중국 세단 판매량 1위 모델은 닛산 실피(46만7638대)다. 뒤를 이어 폴크스바겐 제타의 중국 전략 모델인 라비다가 46만6772대로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적으로 인기가 높은 시빅과 코롤라는 왜 국내에서 판매량이 저조할까?
2019 서울모터쇼에서 공개된 시빅 스포츠 가격은 3290만원이다. 현대 아반떼는 1404만원부터 시작한다. 혼다 시빅 스포츠와 비슷한 등급인 아반떼 스포츠의 경우 모든 옵션을 더해도 2640만원이다. 시빅이 20% 이상 비싼 셈이다.
반면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혼다 시빅, 토요타 코롤라와 현대 아반떼, 기아 K3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미국 가격을 보면 시빅 세단 1만9450달러(한화 약2221만원), 토요타 코롤라 1만9500달러(한화 약2227만원)다. 1만4950달러(한화 약1707만원)의 현대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나 1만7790달러(한화 약2032만원)부터 시작하는 기아 K3와 직접 비교가 가능한 차이일 뿐이다.
중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혼다 시빅은 11만5900위안(한화 약1970만원), 토요타 코롤라는 10만5800위안(한화 약1798만원)부터다. 현대 링동(국내명 아반떼)과 기아 K3는 9만9800위안(한화 약1697만원), 9만6800위안(한화 약 1646만원)부터 시작한다. 4개 모델의 격차가 크지 않은 만큼 미국과 중국의 소비자들은 4개의 모델을 동일 선상에 놓고 고민하면서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반면 국내 소비자들은 토요타 코롤라나 혼다 시빅을 고려한다면 가격이 비싸 한 등급 위인 현대 쏘나타, 기아 K5와 비교를 해야 한다.
수입차는 상대적으로 국내 소비자의 선호를 맞추기 어렵다. 가령 토요타 코롤라의 경우 준중형 세단임에도 1.8L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고 출시됐다. 국내 소비자들에겐 '준중형=1600cc'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당연히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소비자들은 차량을 선택 할 때 브랜드나 차량에 대한 신뢰도가 구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입지를 굳히 토요타나 코롤라, 혼다 시빅의 판매량이 크다. 국내는 위에서 언급한 트렌드를 따라 차량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사회 초년생을 위한 차로 불리는 현대 아반떼나 기아 K3의 판매량이 압도적이다.
토요타 코롤라와 포드 포커스 등 걸출한 수입 준중형 세단이 쓴 맛을 보고 국내에서 철수했다. 혼다 시빅만이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판매 성공을 위해선 가격을 20% 정도 내리지 않는 한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국내 시장에서 '구색 갖추기' 용도에 그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