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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대형 갈등과제를 이른바 ‘공론화 모델’로 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 재개를 권고한 공론화위원회의 결정 방식이 사회적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며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야당의 반대는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여소야대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공론화’라는 명분 아래 무분별한 포퓰리즘 통치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다.
◇文대통령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 숙의 민주주의 모범” 극찬 왜?
문 대통령은 22일 오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에 대한 대통령 입장’ 발표문에서 3개월에 걸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과 관련해 △성숙한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의 모범 △통합과 상생의 정신이라는 극찬을 사용하며 치켜세웠다. 향후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과제의 해결 방식과 관련해 공론화 방식을 확대 도입할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당초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과 관련해 찬반대립이 팽팽했다. 그러나 공론화위 권고안이라는 뚜껑을 열어보니 공사 재개를 결정하면서도 반대 의견을 배려한 보완대책까지 제시됐다. 후폭풍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공사 중단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었고 탈원전 에너지 전환정책의 차질없는 추진이라는 명분도 얻었기 때문이었다.
공론화위 결정 과정에서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참여해 절차적 정당성을 얻은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 중단이 대선공약이지만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국가 주요정책 결정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원칙 아래 결과를 수용했기 때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서 중요한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인식해 내부적으로 감동적으로 지켜봤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제 해결에 획기적인 분수령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새만금사업, 부안 방사물폐기장 건설, 제주 해군기지 건설, 4대강 살리기 사업,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찬반 양론이 극심했던 갈등 이슈의 처리방식과 비교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검경 수사권 조정, 증세 논란에 공론화위 모델 도입될까?
문 대통령이 공론화위 모델을 극찬하면서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이어 공론화 대상이 될 이슈들에 관심도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의 핵심 대선공약 중 찬반양론이 분명하거나 고질적인 우리 사회의 갈등 이슈를 공론화 모델로 풀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당장 검경 수사권 조정, 증세 논란, 사용후 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방식 등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된다.
우선 문 대통령의 핵심 대선공약인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공론화 테이블로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다. 비대화된 검찰권력 견제와 국민 인권보호를 위해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본격적인 논의 과정에서 검경의 갈등은 물론 여야 정치권의 공방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검경 수사권 조정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며 “두 기관의 자율적인 합의를 도모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중립적인 기구를 통해 결론을 내겠다”고 덧붙였다. 검경의 자율합의를 전제로 했지만 ‘중립적인 기구’라는 표현을 통해 공론화 모델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부동산 보유세 등 증세문제가 공론화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연내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다. 특위는 보유세와 경유세 인상, 근로소득자 면세자 축소 등 민감한 세금 이슈를 포함한 조세개혁 로드맵과 추진 일정을 담은 보고서를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 특위를 공론화위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세법은 전문성이 높고 지금도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하는 대의제 기구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시민 중심의 공론화위를 별도로 운영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