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구창신 경사 유해, 67년만에 가족 품으로…6·25 해상 유격전 참전

김관용 기자I 2017.09.22 14:44:30

전남 강진 경찰서 故 구창신 경사 신원확인
전사장소 마을주민과 유가족의 적극적인 제보
2000년 유해발굴 시작 이후 123번째
경찰 전사자로는 22번째 신원확인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지난 1950년 9월 전라남도 강진 경찰서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구창신 경사의 친손자 구봉호(61·인천 부평구)씨의 자택을 22일 방문해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함께 발굴된 유품 등을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가졌다.

이번 6·25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23번째다. 경찰 전사자로는 22번째다. 올해는 지난 19일 경남 합천에서 진행된 故 한진홍 일병에 이어 다섯 번째 행사다.

◇故 구 경사, 6·25 당시 해상 유격전 참전했다 전사

故 구창신 경사는 1910년 전남 장흥군 장흥읍 기양리에서 4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32년 1월 결혼 후 3남 1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경 42세의 나이에 전남 완도해상 유격전에 참전했다.

故 구 경사는 강진 경찰서 소속으로 1950년 7월 27일에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과 함께 완도로 철수해 해상유격전을 전개했다. 강진 경찰서 부대원 150여 명은 마량포(지금의 전남 강진군 마량리)에 진출한 북한군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1950년 8월 5일 고금도에 상륙했다. 이같은 경찰의 도서작전으로 북한군 1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북한군의 완도 상륙 계획을 파악한 경찰은 총본부를 청산도에서 완도로 이동했다. 무안 경찰서 부대원 80명을 여수관내 남면도에서 철수시켜 완도에 증원배치하게 된다. 또한 강진 경찰서 부대원들을 고금도에 배치해 북한군의 완도 상륙을 저지했는데 故 구 경사는 이때 북한군의 총탄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故 구창신 경사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한 “호국의 얼 함” 모습. 국방부 장관 위로패, 유해수습 시 관을 덮은 태극기, 유해발굴 시 함께 수습된 유품(버클)이 포함돼 있다. [사진=국방부]
◇故 구 경사 조카, 수소문 끝에 매장 위치 확인

故 구 경사의 유해는 2017년 3월 14일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에서 버클 등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그의 유해는 전사자를 매장한 위치를 알고 있는 마을주민의 제보와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확인으로 전사자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故 구 경사의 손자인 구봉호씨는 6·25전쟁 당시 경찰이었던 조부가 전쟁 중 전사해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이하 고금도)에 매장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후 고금도를 여러차례 방문해 수소문 끝에 매장지로 추정되는 위치를 확인했다.

구봉호씨는 매장지역에 묻혀 있는 유해가 조부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국유단에 관련 정황을 제보했다. 국유단은 고금도 작전 시 순직한 경찰의 기록과 고금도 지역 향토사에 경찰의 전투기록 등을 확인한 끝에 제보 내용과 상당부분 일치해 지난 3월 13일부터 이틀에 걸쳐 유해를 발굴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故 구창신 경사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한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 [사진=국방부]
국유단은 유해 발굴과 동시에 발굴된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비교·분석하는 신원확인 절차에 돌입했다. 故 구 경사의 손자 구봉호씨는 유해가 발굴되기 전인 2012년 9월 인천 부평구 보건소에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뒀다. 국유단 유가족 찾기 탐문관들은 더 정확한 유전자 시료 분석결과를 얻기 위해 전사자의 친딸, 친손자, 외손자, 증손자 등 다섯 명의 유전자 시료를 추가로 채취했다. 결국 따님인 구정자(81)씨가 부녀관계로 확인된 최종 감정 결과를 받게 됐다.

신원이 확인된 故 구 경사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추후 경찰청 주관으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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