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기본형과 특약으로 구분해 보험가입자들의 선택폭을 넓힌 ‘신(新) 실손보험’이 판매 한 달이 지났지만 실적은 신통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 실손보험의 신규 가입 건수는 예전 통합형 실손보험에 미치지 못하고 기존 보험에서 신 실손보험으로 갈아탄 경우도 기대치를 밑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위원회는 기존 실손보험이 상품 끼워팔기 등으로 보험료 상승을 유발할 뿐 아니라 소비자 선택권을 제약하는 등 문제점이 있다는 이유로 실손보험의 상품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하지만 보장수준이 기존 실손보다 적은 등 상품구조가 매력적이지 않은데다 설계사들의 판매의지도 높지 않아 아직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 ‘기본형+특약’ 형태, 가입 유인 떨어져
9일 이데일리가 실손보험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대형 손해보험사 3사의 지난 4월 판매 건수를 집계한 결과 모두 4만6601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기본형만 가입한 경우는 전체 신규 가입건의 11% 수준인 5100여 건에 그쳤다.
과잉진료 유발항목으로 지목됐던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제, MRI 등을 특약으로 분리하면서 기본형만 가입할 수있는 신 실손보험은 기본형만 가입할 경우 종전 보다 35%정도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입자는 기본형만 가입하기 보다는 보장 수준이 과거 통합 실손보험과 유사한 ‘기본형+특약’ 형태로 가입한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을 가입하는 이유가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인 만큼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험료’보다는 ‘보장수준’을 더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 실손보험에 대한 전환 수요와 신규 수요도 낮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기존 가입자가 새로운 실손보험으로 갈아탄 전환계약 건수는 3개사 합산 148건으로 전체 신규계약건수의 0.3%에 불과했다. 갈아타기 수요가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실손보험의 신규 가입 추이도 옛 통합 실손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A사의 신 실손보험 4월 한달간 신규 계약건수는 1만6000여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통합 실손 신규 계약 건수 2만8000건의 57%에 그쳤다.
◇전환ㆍ신규 계약건수 모두 저조
이 같은 현상은 신 실손보험의 상품구조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손보험의 상품구조는 ‘기본형’과 ‘3가지 특약’으로 나뉜다. 과잉진료 우려가 큰 도수치료·체외충격파·증식치료, 비급여 주사제, 비급여 MRI(자기공명 영상치료) 등을 별도 특약으로 분리해 기본형만 가입하거나 특약까지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보험료는 40세 기준으로 기본형이 남성은 월 1만1275만원, 여성은 1만 3854원으로 신 실손보험이 종전 대비 35% 저렴하다.
하지만 보장수준이 신 실손보험의 경우 기존 실손보다 적다는 단점이 있다. 신 실손보험의 3가지 특약에 모두 가입해야 기존 통합 실손보험과 보장범위와 보장 한도가 같게 된다. 여기에 신 실손보험은 보장 한도와 횟수가 이전 보험상품과 비교해 제한을 받는다. 도수치료는 연간 최대 50회 350만원, 비급여 주사제는 최대 50회 250만원, 비급여 MRI검사는 300만원까지다.
특약의 자기 부담률도 30%로 종전 20% 대비 10%포인트 높다. 보험사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이미 3500만명이 가입해 신규 수요도 많지 않고 보험료도 저렴해 가격 유인이 높지 않은 상품”이라며 “4월 한 달 실적만 놓고 판단한다면 기존 상품을 신 상품으로 전환할 만큼 상품구조는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다” 분석했다.
보험료가 저렴한 만큼 보험설계사들의 판매 의지가 높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보험료가 저렴하면 설계사들이 받을 수 있는 모집 수당이 적어진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신 실손보험이 금융위원회의 발표와 달리 착한 보험도 아니고 소비자에게 실제로 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소비자들은 유·불리를 따져 보고 갈아타기 여부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