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미· 김유성 기자] 10년을 끌어온 이란과 서방 선진국의 핵 협상이 타결되면서 국제 원유시장은 물론 아랍지역 정세 변화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비록 6개월 동안 이라는 한시적 협상이지만 핵 개발 시도로 고립됐던 이란이 석유 수출을 무기로 걸프지역에 다시 강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동발(發) 파워시프트(Power Shift:권력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아랍지역 최대 경제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별다른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적대관계에 있어 온 이스라엘은 ‘역사적 실수’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아파 중심 국가인 이란이 석유 수출로 국력을 회복하면 수니파가 주도하는 중동 정세를 흔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제난 때문에’..이란 협상 테이블로
지난 8월 취임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핵개발 의지를 접고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합의를 시도한 배경에는 이란의 경제난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직접적인 경제 제재는 이란의 대표적 수출 품목인 석유 수출 규모 축소를 불러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의 석유 수출액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2011년 대비 27.4% 줄어든 690억달러(약 73조2297억원)에 그쳤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집계 결과에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2위였던 이란의 석유 생산량 순위가 지난해 5위로 떨어졌다.
석유 수출 감소는 이란 경제의 불황으로 이어졌다. 이란 통화인 리알화 가치는 지난 2년간 미 달러화 대비 절반 가량 추락했고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5.9% 감소했다.
이란은 이번 핵 협상 타결로 약 70억달러 규모의 즉각적인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경제 개선 기대감 속에서 달러 대비 리알화 가치는 지난 24일(현지시간) 협상 타결 몇 시간 만에 달러 대비 2% 상승했다. 이란의 토목공학 기업 AFI 그룹의 나리만 아플라니 외환 트레이더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랍국가들 ‘잠잠’..속내는
서방 선진국들이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랍내 인구 규모에서 이란(약 7985만명)이 이집트(약 8530만명)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시아파 위주 국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원유 수출 증가로 국력을 회복하면 아랍 지역내 판도 변화를 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시리아와 이라크는 반색하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수의 수니파 정권 국가들은 다소 불안해하는 눈치다.
아브라함 디스킨 히브리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란은 이스라엘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특히 중동지역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란은 시아파 주도 국가이며 아랍 내 패권을 잡는 데 관심이 많지만 아랍 내 대부분은 서방국가들과 상대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니파 정권 국가”라고 설명했다.
◇“6개월 시한 협상 완벽하지 않아”..장밋빛 전망 경계도
이란 내외부의 긍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의 시효가 6개월이란 점에서 섣불리 큰 변화를 예상해선 안된다는 시각도 있다. 6개월 안에 실질적인 핵 폐기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웹사이트에 게재된 백악관 발표문(fact sheet)에 따르면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향후 6개월간 이란의 원유 판매량은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연합(EU)의 원유 수입 금지 조치가 계속되고 이란이 하루 100만배럴의 원유 판매량을 유지하게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백악관은 또 여러가지 보험을 포함한 금융 부문 제재가 여전히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에는 EU가 지난 24일 원유 운송보험에 대한 일부 제재조치를 완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백악관 예상과 달리 일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 의회는 이란과의 핵 협상이 6개월 뒤 원점으로 돌아갈 것에 대비해 새 제재안 처리를 강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전화를 거는 등 향후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