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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FX칼럼)방향성 고민은 잠시 접고

이진우 기자I 2003.05.15 15:15:29
[이진우 칼럼니스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 저 나라에서 환율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인터넷 매체에서는 제대로 따라가기 벅찰 만큼 시황과 전망이 난무합니다. 지금 국제외환시장이나 서울 외환시장에서의 환율은 정상적인 시장에서 통하는 수급분석이나 기술적 분석이 잘 안 통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손을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넘치는 분석과 전망에 또 하나의 ‘나중에 가봐야 아는 전망’을 하나 더 보태기보다는 최근 1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의 국내외 외환시장 움직임을 정리하면서 뭔가 시사점을 찾아내 볼까 합니다. ◈ 왜 빠지고 왜 올랐나? 작년 4월 하순 1330원대에서 환율이 급락하던 시점부터 살펴보면 석 달 열흘 동안 170원 가까이 빠진 후 1164원에서 1267.50원까지 100원 이상의 급등, 다시 1168원까지의 100원 급락, 다시 1260원대까지 100원 가까운 급등 이후 또 급락이라 표현할 만한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시장이 고민하는 대목은 달러/엔 환율이 116엔(보다 엄밀히 말하면 전저점이기도 한 115.50엔) 아래로 밀리며 달러약세 현상에 가속도가 붙을 것인지 아니면 유로/달러 1.1600, 달러/엔 116 정도에서 달러반등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에 따라 달러/원 환율도 1190원 아래로 낙폭을 키워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1,210 ~ 1,220원대의 환율을 다시 보게 될 것인지 판가름 난다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지난 1년 여의 기간 동안 환율은 ‘분위기’에 휩쓸려 올랐고, 그러한 환율급등 장세를 야기했던 원화약세 요인이 완화되거나 잠복하면 급등 기세에 버금가는 탄력을 보이며 급하게 환율이 빠졌다. 북핵문제로 대변되는 한반도 고유의 지정학적 위험이 시장에서 회자되고 카드채 부실이나 기업회계 분식 등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 악화요인이 발생하면 역외가 불을 당긴 장세에 역내 은행권 딜러들과 업체들도 뒤따라 달러매수에 나섰다. 심지어 개인들까지 ‘뭔가 불안할 때에는 달러를 사 두자’는 심리로 달러매수에 동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급등, 급락 모두 가파르게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은 달러 실수급(實需給)보다는 환율 급등(급락)을 기대한 역내외 투기적 거래가 더 크게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시장이 과열양상을 보일 때마다 개입에 나섰던 외환당국의 의지대로 특정 레벨들이 지켜졌다는 사실은 최근 거듭된 환율 급등락 장세에서의 승자는 당국임을 의미한다. 장세를 먼저 주도한 역외세력으로서는 환율의 상승폭이나 낙폭을 전부 수익으로 연결시키지 못했기에 아쉽겠지만 매수/매도 시점의 레벨로 보아서는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되고, 인터뱅크 거래에서는 잃은 쪽도 있는 반면 번 쪽도 있어 ‘똔똔’이라 볼 수 있어 결국 환율은 크게 출렁거렸지만 막상 금년 장세에서 국내 기업들과 개인들은 ‘고점매수, 저점매도’로 고생만 한 셈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노림수를 지닌 플레이로 만들어진 장세라기보다는 손절(Stop-loss)로 이루어진 급등락 장세였다는 것이며, 이러한 사실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결론은 이제 달러/원 환율이 이전에 보았던 고점이나 저점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미 경험한 재료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능가하는 더욱 도발적인 행위가 있어야 1220원을 넘을 수 있고, 정말 달러/엔 환율이 115엔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장세가 펼쳐져야 1180원 아래를 기대할 수 있다. ◈ 미국, 환율도 밀어 붙일 것인가? 전세계적인 반전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戰을 단행하였고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면서 부시 행정부는 더욱 ‘세계 운영’에 자신감을 갖는 모습이다. 이라크 공격의 대의명분 중 하나가 ‘대량살상무기’의 제거였는데, 이라크 여기저기를 뒤져봐도 살충제 밖에 찾아내지 못해 미국으로서는 좀 곤혹스러운 감도 없지 않으나 이상하게도 세상은 그러한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악의 축’의 괴수(?)였던 사담 후세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한 의문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과연 재작년 9월 11일 테러의 배후가 정말 오사마 빈 라덴이 맞기는 맞는 것인지, 그가 그러한 끔찍한 테러로 노린 바가 무엇이었는지, 지금 살아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뜬구름 잡는 얘기로 흘러갈 수 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함에도 우리는 너무나 담담하게, 그리고 상식적으로 품어볼 만한 의문도 귀찮아 하며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에(이 칼럼을 주의 깊게 읽는 분들이라면 내일은 환율이 오를까, 내릴까? 일본이 116엔을 막을 수 있을까, 실패할까의 고민에) 몸을 맡기는 셈이다. 정말 큰 그림을 그려가는 세력들은 지구촌 사람들의 그러한 무심함이 너무나 고맙겠지만…… 1999년 1월 유로화 출범당시의 레벨에 근접한 유로존에서도 서서히 유로화의 강세로 인해 유럽경제가 안게 될 부담감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벗어나야 하는 일본으로서도 115엔 ~ 116엔의 Critical Level에서 추가적인 엔화강세를 저지하고자 결사적으로 시장과 싸우는 와중에 미국은 지금의 달러약세를 은근히 즐기고 있음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 모습이다. 재무장관이나 백악관 대변인이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 불변’을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있으나 시장은 “달러약세가 미국 수출업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을 미 재무장관과 미국 행정부의 본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필자는 최근 이러한 ‘통화전쟁’으로까지 설명되는 각국 외환정책 결정자들의 발언을 접하면서 “거품(bubble)일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것이 온 세계가 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시장에서는 “미국이 원한다면 결국 달러는 더 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세력들과 “유럽, 일본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달러가 저렇게까지 떨어진단 말인가? 달러 더 떨어지면 미국이라 한들 그로 인한 부작용이 없겠는가? 그리고 일본 정부도 이번에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세력들간의 소모적인 논쟁과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지금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결국 시장이 그 답을 조만간 제시할 것이다. ◈ 한 번쯤 생각해 볼 선입관 몇 가지 첫째, 달러/엔 환율이 빠지면 달러/원 환율도 무조건 빠져야 한다는 생각 최근 다시 서울 외환시장이 ‘달러/엔 장세’가 되었기에 지금 115.50엔 붕괴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실제 달러/엔의 115엔 하향돌파는 단기적으로 강력한 달러/원 환율의 추가하락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서울 외환시장의 참여자들이 달러/엔 등락에 주목할 때는 이렇다 할 다른 변수들을 마땅하게 찾지 못할 때이다. 달러수급상 큰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나 지정학적인 변수가 발생했을 때에는 원화도 얼마든지 엔화와는 무관한 움직임을 보일 수가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1365.30원은(2001년 4월4일) 달러/엔 환율이 126.70엔 근처일 때였지만 막상 달러/엔 환율이 135엔 돌파여부로 고민하던 2002년 1월 원화환율은 1335원이었다. 엔화가치가 원화가치의 몇 배가 되어야 한다는 공식도 법도 없기에 엔/원 환율은 100엔당 980~1060원 사이를 쉽게 오르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둘째, 당국이 늘 이겨왔기에 이번에도 당국의 의지에 반하면 해로울 것이라는 생각 또는 도도한 시장의 흐름을 시장개입으로 바꾼 적은 없다라는 생각 둘 다 맞다. 1236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지닌 당국이 하루 25억불 남짓 거래되는 시장을 제어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안 될 것도 없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자국통화의 절하를 위해 애쓰는 마당에 한국 외환당국의 의지 또한 지금은 상당히 완강한 것으로 짐작된다.그러나 하루 1조 달러가 거래된다는 국제외환시장에서 정부간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공조개입이 아니고서는 개입으로 시장의 추세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측면에서 후자의 경우도 맞다. 그러나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정말 달러약세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그래서 달러/엔 환율이 115엔 아래로 흘러내리며 하루가 다르게 저점을 낮춰간다면 당국도 이번엔 물러설 수 밖에 없다. 후자의 경우가 틀릴 경우는 시장 포지션이 과도하게 한 쪽 방향으로 쏠려있을 경우이다. 그런 경우에는 개입으로 인한 물량흡수가 바닥을 다지는 효과를 가져온 뒤 사소한 모멘텀의 출현에도 시장은 한 차례 크게 출렁거리며 당국과 맞선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오늘 칼럼에서 향후 환율 방향성에 대한 언급은 없다. 지금 열 명을 세워 일주일 뒤 환율을 예상해 보라하면 다섯 명은 더 빠진다 하고 다섯 명은 이 정도에서 반등가능 하다고 한다. 5:5로 나뉘는 시장은 어렵다. 7:3이면 7을 따라가면 되고 9:1이면 1의 의견을 쫓으면 시장에서 낭패는 면할 수 있다. 유로/달러가 밀리는 와중에(달러강세) 달러/엔도 밀리는(달러약세) 장세, 미국 주가가 오름세를 보여도 달러화는 힘을 못 받는 장세, 종합주가지수는 오르지만 외국인은 팔고있는 장세, 주식 값도 오르고 채권값도 오르는 장세, 이리 생각하면 그리 나쁠 것 없어 보이다가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온통 미해결된 악재들로 둘러싸인 듯한 경제상황…… 잘 나가는 시절에는 편하게 돈이 벌리지만 뭔가 꼬인 시절에는 그 돈이란 것을 벌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환율 더 빠질 수 있는가? 아니, 더 빠져도 되는가?”…… 쉽게 해결될 고민이 아닌 듯 하다. (농협선물 리서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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