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땡'하자…길거리엔 술병 든 청년들이 쏟아졌다

공지유 기자I 2021.03.28 18:05:40

날 풀리자 10시 이후 번화가서 '노상 술판' 벌어져
확진자 쏟아지는데…문 닫은 가게·노점상에 자리잡고 음주
경찰 출동에도 '모른 체'…사이렌 맞춰 춤추며 조롱도

[이데일리 공지유 이상원 기자] “가게 영업이 오후 10시까지라 나가주셔야 합니다.”

지난 26일 밤 9시 58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번화가에서는 영업이 끝난 술집에서 20대, 30대 손님들이 줄지어 나왔다. 술집을 나와서도 한동안 가게 앞에 서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던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길거리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방역 당국이 수도권 식당·술집·카페 등 매장 내 영업시간을 밤 10시로 제한한 지 6주째. 젊은이들이 모인 거리에서는 ‘시간제한 없는 술판’이 열렸다. 이들은 노상을 매장 삼아 새벽까지 술과 음식을 마시며 ‘불금’을 즐겼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번화가에서는 다른 세상의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금요일인 지난 26일 밤 10시 30분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인근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이상원 기자)
◇가게 문 닫자 술병 들고 나와 ‘노상 술판’…새벽 클럽 위해 대기도

지난 26일 이데일리가 찾은 홍대입구 밤거리는 영업제한 시간이 지나고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출입이 통제된 공원을 둘러싸고 자리를 잡아 편의점에서 산 음식을 안줏거리 삼았다. 빈 가게 앞에는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앉거나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영업이 마감된 노점상 가판대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금 홍대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와서 같이 먹자”며 일행을 불렀고, 시간이 지날수록 합류하는 이들이 많아지며 거리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홍대입구 한 술집에서 나온 A씨는 “더 놀고 싶은데 술집 문들이 닫아서 어딜 가야할지 모르겠다”며 “일단 길거리에서 더 돌아다니면서 놀 예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근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술집들이 몰려 있는 세계음식거리 입구에서는 오후 10시 이후 영업이 끝난 매장에서 나온 이들이 남은 술병을 들고 나와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고 길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같이 술을 먹자’며 모르는 여성들을 꾀는 이들의 행동은 마치 클럽을 방불케 했다.

술을 더 마시다가 새벽에 문을 여는 클럽에 가자는 얘기를 주고받는 이들도 있었다.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클럽·단란주점·유흥주점·헌팅포차·콜라텍 등 유흥시설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 영업이 제한돼 있다. 일부 클럽들은 새벽 5시에 오픈해 점심까지 영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요일인 지난 26일 오후 10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입구에서 사람들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지유 기자)
◇“해산해달라” 출동한 경찰 조롱…확진자 500명대에도 ‘남일’

이처럼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술판’을 벌인 이날은 코로나19 확진자가 36일 만에 500명대를 넘어선 날이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27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505명으로 집계됐다.

‘4차 대유행’ 가능성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도 이들에게서 감염 확산에 대한 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스크를 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일행이 몇 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모였다가 흩어졌다가를 반복했다. 26일 이태원을 찾은 B씨는 “안에서 먹나 밖에서 먹나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그렇게 (사람이) 많은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오후 11시쯤 홍대입구 인근에는 순찰차 3대가 도착해 해산을 요구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경찰이 한국어와 영어로 “5인 이상 모일시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당장 해산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들은 못들은 체 술판을 이어갔다. 오히려 순찰차에서 나오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경찰의 제지를 비웃는 듯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결국 경찰은 계속해서 해산해달라는 방송을 반복해서 내보내다가 골목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차들의 이동을 도운 뒤 돌아갔다. 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밤 9시에서 10시로 영업 제한 시간이 늘어난 이후 음주 관련 신고도 눈에 띄게 늘었다”며 “폭행 시비, ‘주취자가 길거리에 누워 있다’는 신고 등 주로 젊은 사람들과 관련된 신고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신고가 들어왔을 경우에도 바로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호소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5인 이상 모임금지’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데 바로 조치하기가 어렵다”며 “우선 사진 등 증거를 남겨두고 구청에 인계하는 식인데, 저녁시간대엔 구청에서 바로 출동하지 않으니 경찰들이 대부분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편 앞서 4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며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와 식당·술집 등 시설에 대해 ‘밤 9시 이후 영업제한’ 조치가 시행됐다. 이후 지난달 15일부터 영업 제한 시간이 오후 10시까지로 한 시간 늦춰져 6주째 이어지고 있다.

누적된 거리두기 피로감으로 최근에는 영업 제한 시간을 어긴 채 영업을 하는 술집·유흥주점에서 직원과 손님들이 잇따라 검거되기도 했다. 지난 24일에는 강남구 역삼동에서 운영시간을 지키지 않고 10시 이후 영업을 하던 유흥주점 안에 있던 손님과 직원 135명이 적발됐다. 지난달에도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불법영업을 한 클럽 7곳이 무더기로 적발된 바 있다.

26일 밤 11시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인근에 모여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경찰이 해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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