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지만, 영화 등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가 미비한 편이다. 중국 영화산업의 출발은 좋았다. 인구 13억명을 토대로 한 중국 영화산업 매출 규모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35.5% 규모로 급성장하면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박스오피스 시장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찰리우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서 극장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뜸한 편이다. 중국정부가 영화산업 육성에 나서 영화시장 파이는 커졌지만, 정부 당국의 통제로 영화 제작과 배급, 상영이 이뤄지다 보니 정작 국민에게 외면받고 있다.
지난 금요일 저녁 북경 조양구에 있는 쇼핑몰의 한 극장을 찾았다. 한국 같으면 예약도 하지 않고 금요일에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쉽진 않지만,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주말에도 예약이 필요 없다는 대답이 한결같이 돌아왔다. 반신반의하면서 예약을 하지 않고 극장으로 향했다. 도착 후 극장의 모습은 다소 한산했다. 또 표를 구매할 때도 영화와 시간을 선택하는데도 구애받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극장에 입장한 이후의 관객 수였다. 두 어명 남짓한 인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영화가 상영되기 직전까지 입장한 관객 수는 10명이 채 안 됐다.
중국 영화시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중국 내 영화·방송 산업을 관장하고 있는 국가광전총국영화관리국(이하 ‘광전총국’)에 따르면, 중국 내 스크린 수는 1만3118개, 그 가운데 디지털 스크린 수는 약 1만2000개로 미국극장 상영업 규모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관객 수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관객 수 증가율은 전년동기대비 각각 25.7%와 41.8%를 기록하며 급증하는 듯 보였으나, 2011년과 작년은 각각 10.8%와 13.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기준 극장 관객 수는 4억7000만명이다. 전체 인구수 13억4300만명 대비 35%에 해당하는 숫자다.
한 사람당 영화관람횟수로 보면 더욱 미미하다. 한해 일 인당 영화 관람횟수는 작년 기준 0.34회다. 한국 3.8회를 비롯해 미국 3.7회, 프랑스 3.2회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데이트 문화에 영화는 아직 ‘생소’
중국인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로는 불법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최신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 안에서 한류 붐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영화 작품은 2001년 개봉작 ‘엽기적인 그녀’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중국 영화관에서 개봉된 적이 없다. 불법 VCD 유통으로 중국에 전파된 것이다.
또 극장을 즐겨 찾는 20~30대층도 극장을 잘 찾지 않는다는 점도 주된 이유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싼 편인데다 아직 데이트 문화로도 자리 잡고 있지 않다. 중국 극장의 티켓 가격은 80~100위안(1만5000~1만9000원) 정도다. 소셜커머스 등을 통해 할인받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싼 편은 아니다. 편하게 극장을 찾기에는 학생이나 젊은 층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것.
칭화(淸華)대 MBA(경영대학원) 학생 팅이(32·남성) 는 “극장에 거의 가지 않는다”면서 “여자 친구와 밥 먹고 극장에 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극히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변 친구들을 봐도 데이트할 때 주로 공원이나 커피숍, 쇼핑몰 등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인민대 학생 린동옌(23·여성) 은 “영화를 좋아해 1년에 2번 정도 극장을 간다”면서도 “그러나 인터넷에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자주 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정부 통제 시스템도 불만..외화 보기 어려워
게다가 엄격한 쿼터제로 외화가 많지 않아 안 간다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중국 영화산업은 정부 당국의 관리와 통제에 의해 영화 제작과 배급, 상영이 이뤄지는 구조다. 영화 관련 산업은 주정부기관인 국가광전총국이 관련 활동을 관리, 감독하고 있다. 특히 영화에 대한 검열이 엄격한 편이다. 위로부터의 개혁 바람이 한참 불고 있지만 영화 산업은 예외가 되고 있다. 중국의 검열 정책은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제시한 사상적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영화가 중국 내 극장에 걸리기 위해서는 중국 당국 검열을 여러 차례 모두 통과해야 한다.
그 과정을 보면, 시나리오를 만들 때부터 이미 검열이 시작된다. 1차 사전검열이라는 시나리오 검열을 통과하면 영화촬영제작허가증이 발급된다. 이어 영화를 제작하고 나서 영화에 대한 2차 사전 검열 문턱을 넘어서면 영화공개상영허가증이라는 것이 발급된다. 이를 받고도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후 검열 과정도 엄격하다. 제목이나 내용을 변경하면 다시 받아야 하고, 상황에 따라 재편집 명령이나 배급·상영금지 처분도 가능하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것. 최근 3~4년 전부터 일반적인 주제에 대한 영화에 대해서는 사전 각본 심사 대신 1500자 분량의 간략한 줄거리 제출로 대체된 것이 그나마 완화된 것이다. 민족이나 종교, 외교, 군사와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 여전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베이징대 대학원생인 구오(31·여성) 씨는 “재미있는 영화가 있으면 극장을 갈 의향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해외영화 배급이 많지 않아 극장은 잘 안 찾게 된다”고 말했다.
◇ 찰리우드 성공할 수 있을까..‘반신반의’
극장 관객 수 증가율은 더디지만, 중국 영화시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영화 관련 규제에 대해서는 깐깐한 편이지만, 투자와 제작만큼은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투자촉진 정책을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중국 영화산업에 민영자본과 해외자본 유입이 가능해졌다. 또 2009년에는 문화산업진흥계획을 통해 문화산업을 국가 차원의 전략산업으로 본격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차원에서 투자도 활성화되고 있다. 얼마 전 중국 최대 부동산업체 다롄완다그룹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에 소재한 380만㎡(약 115만평) 용지에 에버랜드 면적의 3.6배에 달하는 총 건축면적 540만㎡(163만평) 규모 칭다오 둥펑(東方)영화도시(QOMM) 건설에 착수했다. 여기에는 총 500억위안이 투자될 전망이다. 완다그룹은 칭다오를 세계 영화 중심지로 키우기 위해 여러 방책을 내놨다. 우선 QOMM이 문을 여는 2016년부터 매년 9월 칭다오국제영화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아카데미상을 수여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협회(AMPAS) 지원을 받기로 약속받았다. 이 영화제에 스타급 영화배우와 감독 30여 명을 초청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세계 4대 영화 에이전시인 CAA, WME, UTA, ICM과 계약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시장 잠재력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찰리우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의 법무법인 아킨 검프 스트로스 하우저 앤드 필드의 존 버크 연예 전담 대표는 “할리우드의 제작, 배급, 에이전시들이 칭다오로 우르르 몰려갔지만 아직 이렇다 할 계약서에 사인했다는 소식은 없었다”면서 “전문적인 인력 확보가 쉽지 않아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