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24일자 3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파이시티는 서울 양재동 225번지 일대 화물터미널 부지를 사들여 그 자리에 백화점과 사무용 빌딩, 물류센터 등을 지으려는 꿈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부동산 개발업체(시행사)다. 계획대로 됐다면 지금쯤 그 땅에는 삼성동 코엑스보다 더 큰 복합 유통단지가 서 있을 뻔했다.
양재동 코스트코 건너편, 현대차 본사 사옥과는 경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이 땅은 한때 진로그룹의 소유였지만 2003년 경매로 나와 모 업체에 팔렸다. 이 땅이 이듬해 파이시티에 매각되면서 파이시티의 기구한 운명이 시작된다.
당시 서울시는 이 사업부지가 공공의 성격이 있다고 판단하고 인근 부지를 추가로 인수해 도시계획시설로 개발사업을 추진할 것을 파이시티에 권유했고, 파이시티는 2006년 7월까지 4개 필지를 추가로 매입, 9만6017㎡의 개발용지를 확보한다. 파이시티가 서울시에 로비를 시도한 것도 이 무렵 전후다.
실제로 이 대표가 최 전 위원장에게 로비를 시도한 시점으로 알려진 2005년 말과 2006년은 양재동 화물터미널을 복합유통시설로 변경하는 도시계획시설 용도변경 신청을 한 무렵이다. 서울시는 2006년 5월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세부시설 변경결정고시를 통해 잔여부지(1만4000평)까지 통합개발하도록 했다. 터미널 이외에 대형점포와 창고 등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건축 인허가 심의가 늦춰지면서 분양이 지연되고, 당초 세웠던 자금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덮치면서 금융권 PF를 통한 자금조달도 난항을 겪었다.
일반적으로 PF사업은 자금력이 약한 시행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시공사가 지급보증을 하며 사업을 끌어가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 사업장은 시공사인 대우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이 2010년 4월과 6월 각각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시공사마저 나자빠지는 상황을 맞았다.
건축 인허가를 받긴 했지만 시공 자금을 구할 길이 막히면서 결국 채권단은 시행사에 대한 파산신청을 하는 강수를 뒀고 파이시티는 법원에서 파산 대신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져 법정관리인 체제로 접어들게 됐다.
약 1조원의 자금을 대출한 것으로 알려진 채권단은 현재 대출금 출자전환을 마친 상태로 이 사업의 시행권과 부지는 모두 채권단으로 넘어간 상태다.
지난 3월 포스코건설이 새로운 시공사로 선정됐으며 오는 6월께 공사를 시작해 2015년 준공 예정이다. 오피스동은 한국토지신탁이 리츠 투자자들을 모집해 사들일 계획이고 판매시설은 CJ와 신세계 등이 이미 매입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토지신탁 관계자는 "오피스 건물 한 동의 추가 매각 정도가 앞으로 남은 관건"이라고 예상했다.
큰 문제가 없다면 2015년쯤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는 당초 계획대로 고층 오피스 건물과 쇼핑센터, 터미널이 들어설 예정이다. 파이시티가 그 비운의 땅을 사들인 지 약 10여년만의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