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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리포트)토론은 왜 합니까

김웅 기자I 2002.12.11 18:13:27
[edaily 김웅기자] 지난 10일 유력 대선후보 3인의 경제분야 합동토론이 있었습니다. 합동토론이 지녀야할 긴장감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토론방식의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경제부 김웅 기자는 각 후보의 정책과 세계관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실패작으로 규정하고있습니다. `토론`이란 어때야할까요. 많은 기대를 안고 지난 10일 대선후보 합동토론회를 봤습니다. 경제분야 토론이었죠. 그날 토론을 보면서 저는 대학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독일인 친구와 밤새워 술마시며 벌였던 논쟁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일본인 친구와 독일인 친구는 모두 저보다 두세살이 많았지만 학업에 뜻이 없다는 공통점 덕분에 무척 친하게 지냈습니다. 우리는 새벽까지 술마시는 것 말고는 한 일이 거의 없다시피했습니다. 물론 그냥 술만 마신건 아닙니다. 얘기를 했습니다. 좋게 표현하면 토론이고, 거칠게 말하자면 술주정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요. 그때 했던 말이 우리 말이었는지, 일본말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독일말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논쟁가운데 하나는 저와 독일 친구 사이에서 벌어진 `통석의 념` 논쟁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 기간 중에 일본 천황이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식민지배의 사과 문제는 일단락됐으니 일본은 이제 21세기를 함께 열어갈 동반자라는 설명과 함께. 당시 일본 천황의 표현은 "통석(痛惜)의 념(念)을 금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우리말에서 `통석`이란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고 의미도 모호하기 때문에 진정한 사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고 독일 친구는 "속마음을 제대로 내비치지 않는 일본인들의 특성상 그 정도면 충분한 사과가 된다"고 맞섰습니다. 그 친구는 약 5년 동안 일본에서 산 경험이 있으니 한일관계에 꽤 정통한 편이었습니다. 치열한 말싸움속에서 감정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날의 논쟁은 저에게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10일 토론회로 돌아와볼까요. 어째서 대권을 다투는 후보간 토론이 대학생의 치기어린 술자리에서 터져나오는 논쟁보다 긴장감이 떨어질까요. 토론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토론이란 무릇 치열한 공방이 핵심이겠죠. 물론 담배 꼬나물고 있다가 열 받으면 재털이를 날리는 프랑스식 무협이나, 나란히 앉아서 손바닥을 하늘로 쳐들고 어깨를 으쓱거리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고 아수라장을 연출하는 질낮은 미국식 토크쇼를 원하는 건 아닙니다. `치열한 공방`이란 자신의 논리로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파고드는, 말 그대로 논리와 논리가 충돌하는 `진검 승부`를 의미합니다. 그러다가 사실 관계를 왜곡한 인신공격이 날아오면 "당신은 운전면허 없지?" 정도의 동문서답으로 피해나가면 되겠지요. 하지만 10일의 토론은 논리가 충돌할 만한 `깊이`조차 없었습니다. 단지 "누가 조리있게 말을 잘 하더라" 정도의 관전평이 가능할 뿐이었죠. 과거 재경부를 출입할 때, 청중을 봐야 할 시점과 목소리를 높여 강조해야 할 부분까지 표시된 부총리의 강연 원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자리에 나선 대선후보들로선 한마디 한마디를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짐작하고도 남겠죠. 그런 저에게 10일 토론은 정말 하품이 나는 자리였습니다. 그날 토론회에서 각 후보의 정책과 세계관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토론이 지녀야할 기본조차 충족해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움만 남았죠. 갈수록 떨어지는 시청률만큼이나 오는 16일 3차 토론에 대한 기대는 더욱 낮아지고있다는 느낌입니다. 앞서 두차례 합동토론을 보고서 지지후보를 바꿨다거나, 새롭게 누구로 결정했다는 유권자가 거의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보입니다. 알차고 치열한 토론을 기대하기엔 아직 우리 사회의 수준이 모자라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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