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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여름 자녀와 한국에 입국한 뒤 어머니로부터 군 복무 시절 광주의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됐다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택시 운전사’와 ‘서울의 봄’은 더 이상 멀고 복잡한 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부로 와 닿는 내 가족이 이야기였다”고 표현했다.
글에 따르면 꿈도 많고 공부까지 잘했던 그리다씨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반대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능력을 인정해주는 군대”에 입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주로 가 빨갱이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지만 현장에서 본 이들은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들뿐”이었다.
정보병이었던 그리다씨의 어머니는 “거리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들려오는 함성과 총성, 찢어질 듯한 비명과 통곡, 매캐하고 기분 나쁜 연기, 끌려오는 무고한 사람들의 부서진 몸과 당황한 얼굴”을 보게 됐고 이 모든 경험이 자신을 짓누르는 경험을 했다.
“진실을 찾을수록 더욱 혼란만 깊어져 간” 그는 군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조기 제대를 위해 결혼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리다씨를 비롯한 자녀를 낳은 뒤 지난 여름이 돼서야 딸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리다씨는 이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14시간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부르며 노래 끝자락에서는 항상 목이 멨던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서도 엄마의 이야기와 영화의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며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한국에 더 나은 시대를 만들고 싶었기에 프랑스에서나마 커피로 마음을 보탠다고 설명했다.
또 그리다씨는 “나를 조용히 짓누르고 있던 이 무게는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잊고 있었던 것, 과거의 사람들이 감내한 희생으로 물려받은 인간의 존엄이었다”며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향해 “촛불처럼 조용하지 않고 눈물로 호소하지 않으며 그래서 더 강렬한 그 빛”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투명한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형색색의 노래하는 빛들이 모여 새로운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프랑스에서도 수천개의 빛을 뿜어내는 에펠탑 앞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마음을 보태겠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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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터뷰에서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나흘 동안 잠을 못 잤다”며 “시민들에게 마음을 보태는 것이 어머니의 몫까지 치유하는 길이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후 윤 대통령 탄핵 시위가 열리는 국회의사당 인근 카페에서 프랑스에서 한국까지의 항공권 가격에 달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300만원어치를 선결제했다. 탄핵소추안이 다시 국회 본회의에 오르는 오는 14일,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한 몫으로 그리다씨가 마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