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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 전(前) 미국 국무장관은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 상황을 빗대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아프간 철수 결정을 비판한 것이다. 한국에는 전쟁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20년 만에 아프간 내 미군을 철수시킨 결정은 너무 성급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라이스 전 장관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가장 긴 전쟁은 아프간이 아니라 한국이다. 그 전쟁은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 휴전협정이라는 교착상태로 끝났다. 한국은 수십년 동안 민주주의를 달성하지 못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2만 8000명 이상의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다. (아프간보다) 수준이 높은 한국 군대도 북한을 혼자 힘으로는 제지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달성한 것은 한반도의 안정적 균형, 그리고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강력한 존재인 한국이라는 소중한 동맹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월요일(16일) 연설에서 마치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을 선택한 것처럼 ‘우리는 그들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탈레반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7세기의 탈레반 통치, 30년의 내전을 거친 뒤 안정적인 정부로 가는 여정을 마치기엔 20년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아프간 안정에 20년은 충분치 않아
라이스 전 장관은 “그들은 우리와 함께 싸우고 죽어가며 알카에다 세력을 퇴화시키는데 도움을 줬다. 아프간과 동맹국들의 협력 덕분에 우리는 전세계에 대(對)테러 주둔지, 그리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대테러 기구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며 아프간이 동맹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다만 아프간은 우리의 공군력과 지원 없이는 나라를 지킬 수 없었다. 탈레반이 미국이 그들을 버리고 있다면서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은 가족이 죽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을 때 아프간 보안군이 싸울 의지를 잃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라이스 전 장관은 “그들은 소녀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여성이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인권이 존중되는 현대 사회를 만들 기회를 잡았다. 그들은 종종 실패했지만 이 지역의 많은 정권처럼 국민을 잔인하게 학대하지 않은 선출된 지도자들과 함께 신생 민주주의를 건설했다”며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단지) 부패와 마약거래를 결코 길들일 수 없었던 정부였을 뿐”이라고 부연했다.
라이스 전 장관은 “아프간은 한국이 아니다. 우리는 훨씬 더 적은 노력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얻었을 수도 있었다. 아프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되 전투 부대까지 수반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훈련과 항공 지원, 정보를 위한 핵심 미군만 주둔시키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 많은 시간을 줬다면 동맹국과 조국을 보호하기 위한 미 정보당국 및 대테러 자산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파키스탄, 그리고 중동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인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위험한 지역 한 가운데에 우리의 정교한 바그람 공군기지가 더 오래 보존됐을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을 줬다면 우리의 전략적 이익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프간 철군은 베트남 몰락 재현
라이스 전 장관은 “우리는 너무 서둘렀다. 싸우는 도중에 떠났다. 베트남의 몰락을 재현했다. 이제 우리는 결과를 안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탈레반 통치의 본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지역 동맹국들과 국제사회와 협력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믿어준 아프간인들에게 긴급히 피난처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가 여전히 그들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중국, 러시아, 이란은 아프간에서 철수하는 지난 며칠 간의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기억에 새길 것이다. 미 행정부의 신뢰가 손상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이라크, 특히 대만에 대한 우리의 공약을 강화할 때”라고 조언했다.
라이스 전 장관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미 국무장관을, 2001년부터 2005년까지는 미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다. 현재 그는 미 스탠포드 대학의 후버 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