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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사장의 性이야기](19)소라넷 폐쇄가 우리에 던지는 의미

채상우 기자I 2016.04.11 14:46:20
[최정윤·곽유라 플래져랩 공동대표] 날씨가 무척이나 화창했던 지난 화요일, 출근하자마자 등기 한 부를 받았다. 여성가족부가 보내온 이 우편물의 골자는 ‘플레져랩이 회사 사이트에 청소년유해매체물 광고를 했으니 시정하라’라는 내용이었다.

회사 소개 및 위치 안내를 게재한 우리의 공식 홈페이지에 ‘청소년유해물건’인 성인용품을 파는 플레져랩 쇼핑몰 주소를 올려둔 것이 화근이었다. 온라인몰 입장을 위해 철저히 19세 인증 절차를 거치게 하고,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극적인 사진이나 문구를 의식적으로 배제해온 우리가 ‘청소년의 심신발달에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물건을 파는 ‘유해업소’ 취급을 받으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우편물은 10대들에게 정말 해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곱씹는 계기가 되었다. 경험으로 우리가 하는 일이 성적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성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깨달았지만, 과연 10대들에겐 어떨까? 섹스와 섹스의 기쁨에 대한 말하는 것이 청소년에게 진짜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걸까?

개인적인 자아와 세계 사이에 틈이 생겨나며 사춘기를 맞는 청소년기. 모순투성이인 세상을 알아가는 이때, 호르몬은 춤을 추고, 욕망은 충동적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감추려 하는 것일수록 더 알고 싶어진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청소년이었던 십 몇 년 전에도 ‘섹스’라는 단어를 철저히 금기시했다. 그 말을 들으면 간지러운 기분이 들고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한편 그게 도대체 뭔지 알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PC통신 초창기 시절에도 클릭 몇 번으로 야한 소설부터 포르노까지 검색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온라인, 그리고 성인소설과 만화, 잡지 등으로 얻은 성에 대한 정보는 뒤죽박죽이었고, 틀린 내용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현실적인 성교육의 부재였다. 학교와 가족 내, 그리고 대중문화에 성 담론이 없었고, 성에 관해 당당히 이야기하는 롤모델을 찾기 어려웠다. 성관계 영상 유포 범죄의 피해자인 여성 연예인들은 되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사과했고, 그게 TV 연예 프로그램에 반복 재생되었다. 성범죄에 대한 보도는 자극적이었고, 주로 여성 피해자에 불필요하게 초점을 맞췄다.

이런 장면들이 모여 자라나는 이들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가 10대 여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성욕을 가지는 것,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자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90년대 말, 우리 또래라면 기억하는, 성에 관한 전국적 신드롬이 있었다. 성교육 강사인 구성애씨의 ‘아우성-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 강연이 공중파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어머니 세대의 여성이 자신의 사례는 물론, 실제 있었던 케이스를 들어가며 성에 관해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공중파로 보는 것은 매우 신선했다.

최정윤·곽유라 플래져랩 공동대표. 사진=플래져랩
돌이켜보면 우리의 청소년기에 ‘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더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킨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이전보다 온갖 정보 검색이 편해진 지금, 청소년들에게 가장 유해한 것은 제대로 된 정보의 부재, 그리고 대중문화가 은연중에 풍기는 왜곡된 성 인식이다.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성적 즐거움을 음란한 것, 쉬쉬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 잘못된 인식의 결과 중 하나가 소라넷이다. 지난 17년간 최대 음란 사이트로 군림해오다 얼마 전 폐쇄된 이 온라인 커뮤니티는 ‘성인이 은밀한 욕망을 탐험하는 공간’이 아니라 강간 모의, 유출된 성관계 영상, 몰카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던 범죄 사이트다. 그러나 대다수 회원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는 것’을 ‘성인으로서의 성적 즐거움과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이 공간을 이용해왔다. 올바른 성적 즐거움을 찾는 방법에 대한 교육도, 논의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라넷같이 음지에 있는 사이트가 아니어도 청소년의 건강한 심신 발달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들은 한국 대중문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 평균치에서 조금 다른 외모를 희화화하는 것, 폭력을 로맨틱하게 보여주는 것 등은 비뚤어진 메시지를 전한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칠게 상대를 제압하거나 자기 멋대로 하는 행동을 ‘상남자’로 포장해 주는 것이 그 예다.

이런 상황이지만 어쨌든 청소년에게 해로운 것은 섹스토이를 판매하는 우리(라고한)다. 억울한 노릇이다. 만일 우리의 10대 시절에 성적 기쁨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탐구하는 것이 괜찮은 것이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 10대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는 성적 행위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책임감 없는 행동과 파트너를 배려하지 않는 게 나쁘다는 것, 건강과 위생 문제는 타협해서 안된다는 현실적인 조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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