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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의 마켓워치]<25>연준이 불 지핀 美회사채 발행 거품

이정훈 기자I 2020.09.02 11:39:40

올들어 8개월간 美회사채 발행물량만 1180兆 넘어
코로나發 제로금리와 연준 SPV 직매입 덕에 호황
연준 전격적 정크본드 매입에 투기등급 발행도 봇물
기업 회사채 조달 의존도 높아…과도한 부채 부담 커
회사채 자금으로 자사주 사들여…주가 고평가 우려도
美 시장금리 반등 조짐…재무지표 부실한 ...

연준이 유동성 공급을 통해 회사채시장에 지속적으로 펌프질을 하고 있음을 비꼬는 미국 만평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적 대유행) 이후 많은 기업들이 차입을 통해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지급 불능(insolvency) 리스크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로 인해 비용이) 아무리 싸졌다고 해도 차입을 통해서는 결코 과도한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유럽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인 브레번 하워드 에셋매니지먼트를 이끌고 있는 브레번 하워드는 올 들어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을 두고 이 같이 일갈했습니다.

사실 각국 중앙은행이 쏟아부은 막대한 유동성이 정부와 기업들의 역사적인 자금 차입(=국채와 회사채 발행)을 초래한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최근 10여년 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기업 도산과 대규모 실업사태를 막고자 각국 중앙은행들이 회사채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코로나19 쇼크로 인해 신용도가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추락천사(Fallen Angel)` 회사채까지 직접 매입하는 파격을 보이자 이런 현상은 더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투자적격등급은 물론이고 투기등급 기업들까지 나서서 공격적으로 회사채를 찍어대고 있습니다. 금리가 이미 더 낮아지기도 힘들 정도의 바닥권에 와 있을 때 넉넉하게 자금을 확보해 두고자 하는 심산이죠. 실제 현재 미국 회사채 발행잔액은 총 10조달러(원화 약 1경1850조원)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올 1월 이후부터 지난달 말까지 발행된 회사채만 해도 무려 1조달러(원화 약 1180조원)를 웃돕니다. 8개월로 나눠 보면 올해 한 달 평균 147조원이 넘는 회사채가 발행된 셈입니다.

이는 미국 재무부의 지급보증으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설립한 회사채 매입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V)이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 회사채를 직매입한 덕이 큽니다. 연준이 회사채를 직접 사주니 코로나19 위기 직후 크게 벌어졌던 크레딧 스프레드(=국채금리와 회사채금리 간 차이)가 축소됐고, 그 이후에도 안정적인 스프레드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관리한 이 SPV는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를 적절한 가격에 사주고 기업들이 신규로 회사채를 찍을 수 있도록 자금을 태워줌으로써 결국 기업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 연준은 회사채매입기구(PMCCF와 SMCCF), 기업어음매입기구(CPFF) 등 5개의 SPV를 설립해 신용경색에 허덕이고 있던 기업들에게 긴급 유동성을 뿌려댔습니다. 이 중 발행시장에서 회사채를 직접 인수하는 PMCCF와 유통시장에서 이미 발행돼 있는 회사채와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하는 SMCCF 등 이들 두 SPV 투자액만 해도 7500억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연준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채 매입을 위한 SPV의 보유자산 규모


그 덕에 이 SPV가 출범한 지난 3월11일부터 4월27일까지 한 달 반 만에 미국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은 3650억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가 넘는 규모였습니다. 하늘길이 막힌 항공사들의 항공기 인수와 주문 취소가 줄을 이으며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렸던 보잉사 역시 바로 이 시점에 정부에 신청한 구제금융을 철회하고 250억달러 어치 회사채를 찍으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연준이 `타락천사` 회사채를 실제 매입하기 시작한 시점은 5월12일부터였는데, 한 달 앞서 매입 계획만 발표하고도 돈 한 푼 안 쓰고 보잉을 살려낸 것이죠.

이후에 연준은 5월12일이 되자 정크본드 회사채를 조금씩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7월31일 기준으로 연준이 SMCCF 포트폴리오 중 3% 정도를 투기등급 회사채로 채웠습니다. 물론 `BBB` 등급이 55.6%, `A~AAA` 등급이 41.4%로 월등히 높긴 하지만요. 이제 투자자들은 연준의 뒷배를 믿고 `위험하지만 고금리 매력이 있는` 정크본드에 돈을 넣기 시작하죠. 이 덕에 올 2분기 사모펀드(PEF)들이 인수한 정크본드 발행액은 300억달러를 넘어 역대 최대치에 이르렀습니다.

돈을 차입해야 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잉이나 포드 등 한계에 처한 듯 보였던 기업들이 속속 생명을 연장하자 기업들 입장에서는 `설령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가 나더라도 연준이 사실상의 구제금융(bailout)으로 우리를 지원해 주겠구나`하고 생각하며 편하게 부채를 일으키게 됩니다.

연준 덕에 투기등급 기업들의 생존 가능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을 등에 업은 정크본드 발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이처럼 회사채시장이 안정을 넘어 과열 모드로 가고 있는데도 연준과 재무부는 SPV 운영시한을 올해 말까지로 연장했습니다. 코로나19 재유행에 대한 우려 때문인데요. 이렇다 보니 하반기에도 회사채 발행은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하반기에도 회사채 발행이 더 늘어나면서 올 한 해에만 미국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2조5000억달러(원화 약 29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중 투자적격등급이 2조1000억달러로 대부분이지만, 정크본드도 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기업들이 낮은 금리에 회사채를 찍어 자금을 확보하는 게 대체 뭔 문제냐는 거죠. 무엇보다 부실기업 또는 좀비기업을 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요. 경기 침체에 디폴트로 가거나 파산보호 신청으로 갔어야 할 기업을 억지로 살려내는 상황인데요.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이던 1분기 말~2분기에 투기등급 회사채의 스프레드가 크게 벌어졌는데도 기업들의 파산보호 신청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준의 매직이었죠.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제 신용도에 비해 과도하게 낮은 금리에 회사채를 찍어서 버틴 기업들은 나중에 시장금리가 오르기 시작할 때 버텨내기가 버겁겠죠.

미국 투기등급 회사채와 투자적격등급 회사채 간 스프레드가 가파르게 치솟는 와중에도 5000만달러 이상 부채를 가진 기업들의 파산보호 신청은 급감하고 있다.


실제 올 들어 기업들이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무한히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편입 기업들의 시가총액 대비 회사채 발행규모는 50% 수준이었구요. 닷컴 버블 당시에 주가가 오르니 이 비율은 35%로 줄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45%로 올라갔습니다. 현재 이 비율이 다시 50%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또 바클레이즈 미국 회사채 고(高)신용등급지수에 편입된 투자적격등급 기업들의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가비 차감전 영업이익) 대비 총 회사채 발행액은 올 2분기에 3.53배에 이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주가 하락이 크지 않았던 1분기가 3.42배였던 걸 감안하면 회사채 발행이 크게 는 겁니다. 이 비율은 최근 20년간 평균이 2.65배였다고 합니다.

특히 투기등급 기업들의 EBITDA 대비 회사채 발행액은 2분기 말 5.42배를 기록 중입니다. 작년 말 4.44배, 올 1분기 말 4.93배에 비해 높아졌죠. 일례로, 대표 렌트카업체인 에이비스 버짓그룹의 경우 3월말 5배 안팎이던 이 비율이 6월말 현재 27배까지 치솟았습니다. 사실상 현금이 소진되면서 회사채 발행으로 연명하고 있는데요. 금융당국은 이 비율이 6배가 넘어가는 기업에 대해 아예 차입인수(LBO)도 막고 있으니 다른 기업에 팔릴 수 있는 길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준이 계속 회사채를 매입해 투자적격등급과 정크본드 간 스프레드를 좁혀 암묵적으로 비효율적 기업들을 살려준다면 투자자들은 고위험, 고수익 회사채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되겠죠. 결국 이는 시장 과열을 초래하고 실물경제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비효율적 기업들이 계속 사업을 영위한다면 경제 성장은 더뎌질 수밖에 없고 향후 과도한 부채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경기 침체기에 시장금리가 하락하면 투자적격이든 투기등급이든 모든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회사채 발행을 늘리지만, 경기 침체를 벗어나면 디레버리징이 본격화한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나중에 늘어난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또다른 회사채를 찍거나 현금을 전용해야 하는데, 이는 향후 기업 이익을 줄이고 인건비나 시설 투자에 쓸 돈을 줄이게 함으로써 경제 회복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이저 저도 아니라면 늘어난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역시 기업 이익과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겠지요.

보다 멀리 보면, 이처럼 적자국채와 회사채 발행이 급증하는 와중에 연준은 고용 회복을 돕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평균물가목표제를 조만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으니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채 벗어나지도 않은 상황에 이처럼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하에서의 물가 상승)을 유도하는 것은 저임금 계층의 어려움을 키울 수 있고, 연금 등을 제대로 갖지 못한 퇴직자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증시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앞서 `현금부자 애플은 왜 회사채를 찍나`(2020년 8월22일자)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회사채 호황에 신용도가 좋은 기업들은 역사상 가장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찍어 이 돈으로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고 배당을 늘려 주가를 밀어 올리는데 애쓰고 있습니다. 연준이 SPV로 회사채를 사준 투기등급 기업은 `조달한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할 수 없다`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보니 이를 우회해 다른 자산을 매각하거나 유보금을 활용해 자사주를 산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결국 주가가 해당 기업의 펀더멘털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일정 부분 부풀려질 수밖에 없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죠. 더구나 연준 덕에 이렇게 낮은 금리에 회사채를 조달할 수 있는 것이니 결국 중앙은행 지원에 따른 혜택이 기업 임직원들과 주요 주주들에만 집중된다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투자적격등급 기업에 비해 투기등급 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 개선 속도가 더딘 모습을 보인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낮은 시장금리가 유지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실제 최근 인플레이션 상승과 시장 내 기대 인플레이션 회복, 경제지표 회복, 적자국채 발행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미국 국채금리가 조금씩 윗쪽으로 상승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신용등급이 낮으면서도 대규모로 회사채를 찍어 연명한 기업들이 금리 반등국면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시장금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큰 폭으로 반등할 지가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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