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하루 피해 건수 20건 이상, 피해금액 하루 1억원 이상. 홍보도 하고 대책도 내놓고 수사도 하지만 보이스 피싱의 피해규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 담당 경찰관은 "보이스 피싱 수법이 진화하는 것을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머리로 다른 일을 했으면 더 빨리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나날이 발전하는 보이스 피싱 사기범들의 수법을 `두더지 효과`라고 부른다. 감독당국이 피해 예방대책을 세우면 그것을 피해가는 사기 수법을 눈 깜짝할 사이에 또 개발해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관계당국과 보이스피싱 범죄자와의 쫒고 쫒기는 두뇌싸움은 주로 대포통장을 놓고 벌어진다.
◇ 대포통장과의 전쟁
신용카드가 도난당했다거나, 우체국에 택배가 왔는데 찾아가라거나 구실과 이유는 다양해도 보이스 피싱의 목적은 단 하나. 돈을 빼내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범죄자들이 돈을 송금받을 통장이 필요하다. 이른바 `대포 통장`이다.
금융감독당국과 경찰은 여기에 주목해 대포 통장에 집중해서 단속을 나섰다. 길목 지키기 방식이다. 맨 처음 도입한 대응책은 범죄에 사용된 대포통장과 동일인 명의의 다른 모든 통장을 일단 지급정지시키는 것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대포통장은 노숙자 등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접근해 건당 몇만원씩 주고 사들이는 것이어서 한명이 대개 여러개의 대포통장을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에게서 여러 개의 대포통장을 사들이더라도 한 번 들통나면 나머지는 모두 못쓰게 되는 상황이 되자 대포통장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거래되는 통장 가격도 치솟았다. 최근 1개월간 2개 이상의 계금계좌를 개설하는 고객에게는 개설 목적을 확인하는 제도도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대포통장을 만들어 팔기 어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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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대포통장의 공급이 다소 줄긴 했지만 보이스피싱 범죄는 계속 이어졌다. 감독당국이 개발한 두 번째 대책은 보이스피싱 범죄와 흡사한 입출금 양식 보이는 통장을 자동으로 추적해 지급정지를 시키는 것이었다.
한 당국 관계자는 "대개 대포통장을 구하면 1만원 이하의 돈을 입금시키고 실제로 출금이 되는지 출금해본 후에 범죄 대상자를 물색해 돈을 송금받고 바로 꺼내가는 행태를 보인다"면서 "새로 통장을 개설한 후 소액을 입금했다 출금하고 다시 며칠 후 수백만원의 돈이 입금되는 그런 계좌들을 실시간으로 모두 걸러내 지급정지를 건다"고 말했다.
◇ `오래된 통장 구하기` 등 기상천외한 수법들 등장
그러자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은 당국의 조사 목표가 되기 쉬운 새로 개설한 대포통장 대신 수개월 이상 오래 사용했던 `헌 통장`을 찾아 나섰다.
인터넷에 대출 광고를 내고 전화를 걸어온 고객에게 신용등급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래 거래한 통장이 필요하다고 속여 받아내거나 대출전용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통장과 현금카드를 택배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용카드 한도를 늘리기 위해서는 사용 내역이 많은 통장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기상천외한 구실로 통장과 현금카드를 받아내 대포통장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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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당국은 결국 `헌 통장`을 활용한 보이스 피싱을 막기 위해 또 아이디어를 짜냈다.
헌 통장이든 새 통장이든 현금 지급기나 폰뱅킹으로 돈이 입금된 계좌에서 일정 시간 이내에 인출거래가 시도되면 일단 지급정지를 시키고 조사를 하는 방식이다. 대개 피해자들은 현금 지급기나 폰뱅킹으로 돈을 보내고 돈을 보낸지 10분안에 모두 꺼내간다는 점을 이용한 색출법이다.
그렇다고 단속을 피해 몇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돈을 보낸 피해자가 정신을 차리고 신고를 하게 되니 범죄자들 입장에서는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출금을 정지시킨 후 돈을 보낸 사람과 해당 계좌주에게 전화를 걸어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송금인지 여부를 확인한 후 계좌를 풀어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수상한 계좌를 일단 지급정지시키는 방식은 꽤 효과가 있었다. 최근 1년6개월동안 발빠른 지급정지로 인출을 막은 돈만 510억원이 넘는다. 하루 평균 1.3억원 꼴이다.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이 피해자들에게 돈을 보내게 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그 중에 60% 정도는 인출하지 못하고 통장에 묶여있게 된다는 게 관계 당국의 설명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에는 경찰서나 은행, 금감원의 실제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찍히게 조작해서 보이스 피싱 범죄인 것을 감추는 경우도 많다"면서 "속지 말 것을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피해자가 있더라도 출금 전에 지급정지를 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범죄 수법과 유형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