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좌동욱 기자] 지난 16일 오전 하나금융지주(086790)가 외환은행(004940)을 인수한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발칵` 뒤집어졌다.
국내 은행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수·합병(M&A)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년간 공을 들여왔던 우리금융(053000) 매각작업도 무산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추진건은 금융위와 금감원을 (금감원장을 제외하고) 통털어 한명만 알고 있었다"며 "(외부와 내부에서) 뒷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전했다.
하나금융은 지난 주말 금융감독원 한 고위 관계자에게 `외환은행 인수 목적으로 대주주인 론스타와 논바인딩(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사전 보고했지만 이 관계자는 보안문제로 금감원장을 제외한 다른 관계자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 뒤통수 맞은 `금융당국`..우리금융 민영화 판깨지나?
금융당국이 당황하고 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하면서 우리금융 민영화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이 우리금융 인수전에서 발을 뺄 경우 복수 이상의 입찰 경쟁자가 있어야 하는 `유효한 경쟁입찰`이 성립되지 않아 지방은행을 제외하곤 매각 자체가 유찰될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우리금융 매각 입찰은 하나금융의 `합병안`과 우리금융의 `독자 민영화안`이 맞붙을 것으로 예상돼 왔으나 이 구도가 깨질 공산이 커진 것이다.
우리금융과 금융당국은 제3의 인수자나 유찰 후 수의계약 가능성도 열어두지만, 특혜 시비나 헐값 매각 논란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또 하나금융이 우리금융 민영화 판깨기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듣기 싫어 일단 26일 인수의향서를 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하겠다는 결론이 나면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 회장은 18일 기자들과 만나 "외환은행 인수 여부를 1주일내 끝내겠다"며 외환은행 인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반면 우리금융 매각 입찰 참여에 대해서는 "더 두고 봐야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하나금융은 늦어도 오는 25일까지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 초조해진 이팔성 회장..우리금융 유찰 막아라 `동분서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도 당황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회장은 이명박 정권 집권초 우리금융 민영화에 소극적이었던 정부를 1년이 넘도록 설득해 매각 작업에 `시동`을 건 장본인이다. 금융당국도 10년 가까이 끌어온 우리금융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기 위해 우리금융 경영진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매각대상인 우리금융의 경영진이 과점 주주를 끌어들여 독자 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쟁입찰 압력을 높이려는 금융당국의 교감과 묵인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말 연초만해도 우리금융 경영진은 과점 주주 컨소시엄 방안에 부정적이었다"고 전했다.
우리금융 경영진은 우리금융 매각 유찰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동안 추진해 온 과점주주 컨소시엄 구성 완료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
우리금융은 ▲해외 투자자 25% ▲대·중소기업 투자자 20% ▲국내 연기금 등 10% ▲우리사주조합 5% 등으로 과점(寡占) 주주 컨소시엄을 구성, 정부(예금보험공사) 소유 우리금융 지분 56.97%를 전량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금융산업 재편, 시장이 주도할 듯..어윤대 회장 행보 `주목`
금융권 일각에선 이번 사례를 두고 금융산업의 주도권이 관(금융당국)에서 민간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과거 관치(금융규제)와 인맥을 바탕으로 금융산업 재편을 주도했던 금융당국의 힘은 민간 영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국내 금융산업 재편과정에서도 시장 참여자들의 역할과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외환은행 인수를 검토하겠다는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말부터 국책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불가방침을 수차례 밝혀왔고 이런 방침은 현재까지도 바뀌지 않았지만, 민 회장은 금융당국에 외환은행 인수를 재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산업은행과 M&A를 희망해왔던 외환은행 노조는 민유성 회장 발언에 부응, 하나금융의 인수를 결사반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현재까지 M&A와 거리를 둬왔던 어윤대 회장의 움직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어 회장은 지난 6월 취임 후 그동안 KB금융(105560)을 둘러싼 지배구조 공백과 지지부진했던 은행 구조조정 문제를 예상보다 빠른속도로 해결하면서 취약점인 증권 부문 등을 비롯한 덩치 경쟁에 합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어윤대 회장도 어떤 식으로든 현 정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